고연전 축제를 더럽히는 신분의식... 지방캠퍼스 차별과 혐오를 부른다

입결 성적이 하나의 신분...지대이익 누리며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 멸시
이대 평생교육원 사건, 인국공 사건, 구의역 김군 사건 등도 같은 문제

이승훈 승인 2023.09.11 14:00 의견 0
고연전(연고전)에서 고려대 학생들과 연세대 학생들이 응원 중인 모습 / 사진=연세대


고려대학교와 연세대학교의 정기 친선 경기 대회 (이하 고연전)에서 지방 캠퍼스 학생의 행사 참가 자격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11일 여러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 9월 8일~9일 열린 고연전 행사에서 '지방 캠퍼스 학생들은 고연전 행사 참가할 자격이 없다'는 내용으로 지방 캠퍼스 학생들을 혐오하고 차별하는 글들이 올라왔다.

예년에도 종종 있었던 일이라 일부 고려대 연세대 학생들이 저지르는 일탈행위로 생각했지만 여러 보도를 종합해 보니 소수의 일탈행위라고 치부하기 어렵고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행위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경악스럽고 우려하는 점은 이러한 지방 캠퍼스 학생들에 대한 차별과 혐오 행위를 나무라는 의견들을 고려대학교와 연세대학교 학생들이 내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학생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의 자유게시판에 지난 7일 연세대 서울 신촌캠퍼스 재학생으로 추정되는 누리꾼이 '원세대 조려대'라는 제목으로 올린 게시물을 보면,

"연고전 와서 사진 찍고 인스타 올리면 네가 정품 되는 거 같지?"라며 "너넨 그냥 짝퉁이야 저능아들"이라면서 지방 캠퍼스 학생들을 혐오하고 멸시하는 글이 올라왔다.

또 고려대 학생 온라인 커뮤니티 '고파스'의 익명게시판에도 지난 5일 "세종(세종캠퍼스 학생)은 왜 멸시받으면서 꾸역꾸역 기차나 버스 타고 서울 와서 고연전 참석하려는 거임?"이라는 글이 게시되었다.

고려대학교 본교 학생의 혐오와 차별 가득한 글을 본 세종캠퍼스의 총학생회는 서울캠퍼스 학생들이 세종캠퍼스 재학생을 '학우'가 아닌 '입장객'으로 표현했다고 주장하면서 논쟁이 격화되었다.

이 사건을 보도한 연합뉴스에서는 한 고려대 학생의 입장을 밝혔다. 서울캠퍼스 4학년생 구 모(24) 씨는 "입학 성적도 매우 다르고 각 학교의 구성원의 학업 성취도 역시 매우 다르기 때문에 우리 학교의 일부라기보다는 아예 다른 학교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에브리타임'의 자유게시판에 지난 7일 연세대 서울 신촌캠퍼스 재학생으로 추정되는 누리꾼이 '원세대 조려대'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게시물


연세대 학생도 마찬가지다. 연세대 신촌캠퍼스 공학계열 학과에 재학 중인 이 모(27) 씨는 "이름만 같고 아예 다른 학교인데 왜 본교의 이점을 취하려고 드는지 잘 모르겠다. 자신들의 수능 점수를 까먹은 것 같다"고 말했다. 우려스러운 모습들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시사평론가인 진중권 씨 등은 요즘 학생들의 '공정'에 대한 인식이 민감해졌다고 분석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공정이 물론 필요하지만 공정의 방향도 중요하다.

서울캠퍼스(본교) 학생들은 실력이 우수한 학생들이 들어가는 명문 학교라는 평판을 지방 캠퍼스 학생들이 실력도 없이 누리려는 '무임승차'가 못마땅하다면서 공정성을 따지면서 혐오와 차별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자. 같은 학교의 축제에 같이 와서 즐기는 게 어째서 무임승차가 되나?

연세대 미래캠퍼스 의과대학 학생들은 또 저런 괄시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를 종합해 보면 서울캠퍼스 학생들은 입결 성적이 낮은 지방캠퍼스 학생들과 같은 취급을 받는 게 못마땅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 왜 축제의 장에서 따지나? 나중에 졸업해서 취직할 때 실력으로 따지면 되는 일이다. 입사할 때 면접관이 알아서 잘 실력을 평가해 줄 것이다.

입결 성적이 하나의 신분이 되어버렸다. 그 신분은 취직하고 은퇴할 때까지 따라다닌다. 명문대 졸업생(졸업생이라기 보다는 입학생)이라는 '간판'은 한국 사회에서 일종의 '지대' 역할을 한다.

지방 캠퍼스 학우들을 혐오하고 멸시하는 학생들이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강고한 한국 사회를 더욱 강고한 이중구조로 만들고, 지대이익을 누리면서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멸시하리라는 것은 안 봐도 뻔하다.

'짝퉁'이라느니 '저능아'라느니 학우들을 욕하는 청년들은 인간성을 의심할만하다. 같이 지내기조차 꺼려질 것이다.

그런 학생들을 나무라지 않고 방조하는 수많은 고려대 연세대 학생들도, 마찬가지로, 사회악에 일조하는 '악의 평범성'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연고대 학생들이 요구하는 공정성이라는 것은 "지대착취를 할 기회에서의 공정"이다. 즉 공정하게 좋은 데 들어가서 공정하게 지대를 누리고 공정하게 착취를 하는 그런 공정성말이다.

이 사건 외에도 이화여대 평생교육원 사건이나 인국공 사건이나, 구의역 김군 사건이나 본질적으로 같은 사건이다. 즉 '지대구조를 둘러싸고 나타나는 사건들'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공정과 형평 등을 내세우지만, 진짜 경쟁을 피하고 지대구조에서 나오는 이익을 누리겠다는 본심이 이런 사건들을 만든다.

매 순간 경쟁을 하겠다는 마음가짐, 계속해서 자신의 실력을 키우겠다는 마음가짐이 있다면 절대로 지방 캠퍼스 학우들을 욕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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