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파해석 능력과 비동의간음죄
남자의 추파해석능력 퇴화는 진화심리학적 현상
대법원, 비동의간음죄 인정하는 듯한 판결 내기 시작
성적자기결정권을 보호법익으로 한다면 동의가 중요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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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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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은 사람의 얼굴 표정에서 감정을 파악하는 능력, 비언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여자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고 한다. 눈짓을 포함한 표정, 혹은 간단한 대화를 사용한 추파(秋波, flirting)의 경우에도 추파를 해석하는 능력이 여자에 비해서 훨씬 떨어진다는 것이다.
즉 표정이나 말에서 호의의 표시 내지는 성교 허락의 표시를 파악하는 능력이 남자는 여자에 비해 훨씬 떨어지고, 거절의 표시를 승낙의 표시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부스(David Buss)는 남자들의 이 같은 능력 부족이 진화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즉, 여자가 남자에게 추파를 던졌는데 남자가 알아채지 못하면 남자는 성교할 수 있는 기회를 날리게 되어 자기의 유전자를 확산시키지 못하는 손해를 보지만, 여자가 남자에게 추파를 던지지 않았는데 남자가 추파라고 오인하는 경우엔 남자는 별다른 손해가 없다는 것인데,
따라서 남자는 여자의 말, 표정, 행동 등이 애매한 경우에는 추파로 해석하도록 진화했다는 것이 데이비드 부스(David Buss)의 주장이다. -자연주의적 해석의 오류를 조심. 사실을 가정한 것이지 그것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사실과 당위는 구별된다-
남자들의 이 같은 비언어 커뮤니케이션 능력으로서의 추파 해석 능력의 퇴화는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환경 적응의 결과이고 진화이지만, 근대 이후 인권 의식의 성장으로 이처럼 추파 해석을 잘못했을 때, 남자들이 부담해야 할 손해가 구체적으로 생겨났다.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비동의간음죄가 바로 추파해석을 잘못하는 남자들이 부담해야 할 손해가 커진 전형적인 사례다. -꽃뱀의 사례는 이 쟁점과 무관하니 거론하지 말아주시길-
그간 논의를 지켜본 결과 서구의 경우와 같이 한국에서도 주로 보수적인 사람들, 권위주의적인 사람들일수록 비동의간음죄를 반대하고 진보적인 사람들, 자유주의적인 사람들일수록 비동의간음죄를 찬성하고 있었다.
비동의간음죄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입법을 반대하는 데에 노력을 기울이지만 그 노력이 무망하다. 왜냐면 2021년부터 대법원 판례에서 비동의간음을 인정하는 듯한 판결을 냈기 때문이다. (대법 2021.2.4. 선고 2018도0781판결)
재판부는 해당 판결에서 "피해자의 특수한 사정으로 인해 거절의 의사표시를 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행위자가 쉽사리 동의를 인식하였다고 판단해서는 아니 된다"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로 인해 한국도 이제 사실상 비동의간음죄를 도입한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이 아무리 대륙법계라지만 대법원 판결은 꽤 구속력이 있다. 사실상 입법한 것과 별 차이가 없다.
참고로 한국의 법이 따르고 있는 독일의 경우 2016년 형법 개정에서 비동의간음죄를 신설했다. 이는 성적자기결정권 관련 범죄의 본질을 유형력 모델에서 동의 모델로 변경한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1990년대부터 성관련 범죄의 보호법익을 성적자기결정권이라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때 논리에 철저한 독일 사람들은 관련 범죄의 본질을 유형력 모델로 보는 것은 모순이라고 본 것이다. 성적자기결정권 침해 범죄의 본질은 동의 모델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논리에 철저한 독일 사람들의 생각이다.
본인이 추파해석 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사전에 상대의 확답을 받거나 증거를 확보하는 수밖에 없다. 과신하지 마시라. 상대가 No라고 하면 Yes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한국의 판사들은 나름 중립적이고 판단력이 뛰어난 사람들이다. 재판부가 터무니 없이 판단하지는 않는다. 판사들을 믿는 수밖에 없다.
자연 환경이 아닌 규범적 환경에 의해서도 적응과 진화가 일어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러한 성적자기결정권 관련 동의 모델화 규범의 변화는 인류 역사 진보 과정에 비춰볼 때 계속 유지 강화될 것은 분명하다.
진화의 역사를 보면 매우 짧은 기간에서도 진화가 이뤄지는 경우도 있다. 물론 금세기 내에 이 같은 진화가 나타나지는 않겠지만... 언젠가는 추파 해석과 관해 비언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발달한 남자들로 적응 진화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상상을 해본다.
평판경제신문 발행인 겸 기자. 레마코리아 대표이사. 문화정책학·과학기술정책학 박사 과정 재학 중,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경제사상을 연구하면서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를 통합하는 포스트자유주의 이론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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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e.seungho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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