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1월 21일)는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유니(본명 이혜련)의 사망 17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유니 생전에 유니를 인터뷰한 본 필자는 그의 페미니스트로서의 면모를 회고하고 다시금 추모하고 기억한다.
유니의 장례식 때 유니의 어머니가 "딸을 기억해 달라"라고 팬들에게 했던 말이 기억도 난다. 짠하다. 필자는 국민일보에서 기자로 활동할 때 인터뷰에서 유니를 만난 적도 있고 해서 유니의 죽음은 내게 큰 충격이었다.
인터뷰 때의 유니를 기억해 보면, 후배 기자들이 유니와 인터뷰를 한다고 해서 평소 유니를 좋아했던 필자는 하던 일을 제쳐두고 후배의 인터뷰 현장에 꼽사리 끼어 들어서 후배들과 같이 유니를 인터뷰했다.
유니에게 물어보고 싶었던 것은 딱 하나. 페미니스트들이 유니의 섹시함에 대해 "여성의 지위를 떨어뜨린다"면서 비판하는 것을 주변에서 많이 보아왔기에 당자자인 유니는 페미니스트들의 이러한 비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가 매우 궁금했다.
유니를 처음 봤을 때, 그 큰 두 눈과, 수술로 부풀린 가슴이 눈에 확 들어왔다. 가슴이 너무 커서 오히려 미적으로 좋지 못한 느낌이 들어 안타까웠다.
유니에게 "유니가 생각하는 섹시함이라는 것이 뭐냐"고 물었더니 유니는 "섹시함은 노출이 아니라 감춤"이라고 답했다. 뭔가 범상치 않은, 한 내공이 느껴지는 대답이었다.
후배 기자가 질문을 연이어 던지고 유니가 막힘없이 조리 있게 답을 줄줄이 하는 가운데 내가 다시 유니에게 "상품화되고 있는 유니의 섹시함이 사회적인 성으로서의 여성의 지위를 떨어뜨린다는 페미니스트들의 지적에 당사자로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유니는...
"섹시함은 나의 실체는 아니고 나의 콘셉트며 나의 무기다. 섹시함을 여성이 통제할 수 있다면 여성의 지위를 높이지만 여성이 통제하지 못하고 섹시함이 남성에 의해 좌우된다면 여성의 지위를 떨어뜨리며 여성을 비참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의 섹시함을 통제하고 나의 무기로 삼는다" 고 대답했다.
미국의 팝스타 마돈나가 섹시 코드로 한창 주가를 높일 때 미국의 학부모들이 마돈나가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준다고 비난했다고 한다. 이에 마돈나는 "자기와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비난하거나 평가해서는 안 된다. 나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내가 선택한 영역이 '섹스'일뿐이다."라고 말했었다.
섹시함에 보수적인 사회의 비난에 대해 마돈나가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주장했고 유니는 여성으로서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주장한 것이다.
두 사람 모두 높은 인권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칭찬할만하다. 거기에 유니는 여성으로서의 자신과 여성 인권까지 자각하고 있다는 점이 높게 평가될 만하다. 유니가 마돈나보다 더 의식 수준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유니가 한참 활동했을 당시엔 사방에서 유니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당시 유니를 비난하는 부류는 두 부류였다.
한 부류는 여성의 성상품화를 비판하는 페미니스트들이었다. 특히 한겨레신문에서는 이러한 페미니즘에 입각해서 여성의 성상품화를 비판하며 유니를 직접 비판하는 기사, 칼럼을 싣기도 했다.
유니를 비난하는 또 다른 한 부류는 가부장권위주의와 남성절대우월주의에 쩔어있는 마초들이었다. 이 전혀 다른 페미니스트들과 남성우월주의자들이 유니에게 악플을 마구 올리고 비난했었는데 그 정도가 매우 심했었고 결국 유니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유니가 여성의 지위를 떨어뜨리고 있다며 비난하는 페미니스트들의 생각과 다르게 필자는 오히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유니와 같이 여성의 섹시함을 드러내는 것이 여성의 인권을 신장시켜왔다고 본다.
실제로 마돈나는 그 섹시함을 드러냄으로써 여성의 인권을 신장시킨 대표적인 여자 연예인으로 평가받는다. 연예인이 여성 자신의 섹시함을 드러내는 것이 왜 여성의 인권을 신장시킨다는 평가를 받게 될까?
그 이유는 아마도, 남성의 성적 판타지를 보여주는 그 여성들과 그 여성들의 이미지를 남성들이 통제한다는 것은 환상일 뿐이며 현실은 오히려 남성들이 그것들에게 통제받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남성의 성적 판타지를 보여주는 그 여성들과 그 이미지를 남성들이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남성들이 깨닫는 순간 남성들은 약자의 지위로 떨어지게 된다.
가부장 권위와 남성 절대우월주의에 쩔어있는 마초들이 섹시한 여성을 천박하고 부도덕하다며 비난하는 이유가 그것일 것이다. 탈레반이 미인대회에 출전하려는 아프간 여성을 암살하려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다.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인정할 수 없고, 욕망 또는 이미지와 현실의 괴리에서 좌절감을 느끼며 여성에게 통제받는 남성을 그들 남성이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섹시한 여성을 비난하고 죽이려는 것이다.
섹시함을 팔고 말고를 결정하는 것은 여성이다. 이러한 실체를 남성들이 깨닫는 순간 욕망을 가진 남성들은 약자의 지위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욕망을 통제하는 여성은 지위가 높아지기 마련이다.
이러한 관계를 인정하는 남성은 여성과 평등해질 수 있고 유니와 같은 스타를 팬으로서 평등하게 바라볼 수 있다. 나는 유니의 섹시함은 그녀의 콘셉트라기 보다는 개성이며 인격이라고 본다.
여성의 섹시함을 소비하는 남성이 약자의 입장이 된다는 실체를 깨닫지 못하거나 약자임을 인정하지 않고 우쭐대는 남성들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멍청하고 무식한 남성들을 굳이 신경 써 줄 필요가 어디 있을까. 만일 그들이 주제넘는 짓을 하면 법대로 하면서 혼내주면 될 일이다.
유니는 자신의 섹시 콘셉트에 대해 남성들이 자신을 비난하는 것에 대해서는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유니는 다만 "여성들의 나에 대한 평가에 주의한다"며 "여성들이 나를 비난할 때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여기서 그녀의 페미니스트로서의 자매애도 볼 수 있다.
인터뷰 내내 논리적으로 거침없이 대답하는 유니를 보면서 유니는 섹시하기도 하지만 섹시하다기보다는 똑똑한 여자라는 인상을 주었다. 토크쇼의 사회자로 나서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유니는 말을 조리 있게 잘했다.
쉴 틈 없이 바쁜 생활 속에서도 틈을 짜내 많은 책을 읽는 유니, 열심히 살고 있는 그녀가 아름다웠다는 생각을 했다.
유니가 당당하게 지질한 악플러들과 싸웠으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하니 많이 아쉽고 짠하다. 필자는 유니를 비판한 페미니스트들은 가짜 페미니스트이고 유니야말로 진짜 페미니스트였다고 생각한다. 유니의 명복을 다시 한번 빈다.
평판경제신문 발행인 겸 기자. 레마코리아 대표이사. 문화정책학·과학기술정책학 박사 과정 재학 중,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경제사상을 연구하면서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를 통합하는 포스트자유주의 이론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평판경제신문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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