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 없는 유럽 나토 동맹국들 입장에선 미국이 빠진다면 영국·프랑스가 핵무기를 쓸지 믿을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며 “현재로선 미국의 핵 억지력을 대체할 방안이 없다”고 요즘 유럽에서 “더는 안보를 미국에 의존할 수 없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유럽의 자주국방 실현은 요원하다는 얘기다.
전혜원 국립외교원 교수가 유럽 각국의 현실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신냉전 구도에 따라 국제정세를 보고 있다. 이런 식으로, 신냉전 프레임으로 국제 정세를 보면 유럽 각국은 딜레마를 해소할 답이 없다.
애초에 구도나 세계관 자체에 오류가 있기 때문에 세계관 자체를 바꿔야 한다.
그래서 필자가 주장하는 것이 신냉전 구도를 중첩적다자주의 구도로 번환시키는 것이다. 즉, 현실의 국제정치외교 정책에서 보면 러시아 신봉쇄 전략을 포기하고 러시아를 포용하는 전략으로 수정하는 것이다.
공산주의 일당독재 국가인 소련을 봉쇄하는 것은 옳은 정책이지만 자본주의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러시아를 봉쇄하는 것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계속 이런 식으로 딜레마 상황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나찌 전력의 독일과 손잡은 유럽이 왜 러시아와는 손을 잡지 못하나? 얼마든지 손을 잡을 수 있다. 세계는 평화롭게 서로 교류 협력하는 길을 찾아야지 계속 이렇게 대립하기만하면 곤란하다.
개인적인 전망으로는 중국의 자본과 상품들이 유럽을 지배하고 아프리카와 제3세계를 지배할 때쯤 유럽의 지도자들이 그제서야 "아 이 산이 아닌가벼"라고 하면서 대러 신봉쇄정책 포기, 대러 디커플링정책을 포기하고 러시아를 포용하고 러시아와 상호 협력하는 길, 중첩적다자주의 구도를 추구하지 않을까 싶다.
한편, 지난 달에 YTN에서는 신냉전 특집으로 국제전쟁을 다뤘다. 전문가들은 중국-대만 양안 전쟁에서 중국이 침공하면 대만은 2주를 못버티지만 미국과 일본이 대만을 지원하면 중국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만약 양안 전쟁이 벌어지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처럼 장기전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너무 피상적이고 너무 정적(static)인 분석이다. 국제정세 상호작용을 보지 않고 너무 군사력 위주로만 보고 있다.
필자는 중국-대만 양안 전쟁의 발발가능성 자체를 매우 낮게 본다. 러시아의 경우는 전쟁을 하지 않고 그냥 계속 평화롭게 시간만 보낼 경우에는 도네츠크 콤비나트는 물론 일단 나토가 동진하면서 러시아는 크림반도와 흑해함대를 잃어버리기 때문에 러시아는 결국 중앙아시아 패권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것은 러시아의 국가 생존 대전략인 유라시아주의의 근본이 무너지는 시나리오이므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러시아와 중국은 다르다. 중국은 대만을 가지지 못해도 중국의 생존이 위태로울 일은 없다. 그래서 대만이 스스로 내부에서 무너지지 않는 이상 중국은 대만을 침공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중국이 대만에 대해 계속 전쟁을 운운하며 위기상황을 부각시키는 이유는 그렇게 해야 미국과 서방의 관심과 역량을 중국쪽으로 이동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은 중국을 막느라 중동에서 전략자원을 축소시켰고 이에 따라 중국이 중동으로 진출하는 기회가 생겼다. 연이어 아프리카까지 일대일로를 순조롭게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전략은 36계의 조호리산(調虎離山)계다. 즉 호랑이를 밖으로 나오게 하는 계, 미국을 중동에서 나오게 하여, 동아시아로 전략자산을 집중시킬 때 그 틈을 이용해 중동과 아프리카로 진출하겠다는 국가대전략을 추진하는 것이다.
중국이 중앙아시아와 중동 그리고 아프리카 일대일로를 성사시키는 이익을 생각해보면 세계패권까지 가능하다. 세계를 차지하는데 대만을 가지지 못한 것이 중국의 생존에 그리 큰 위협이 될 수는 없다.
대만을 차지하지 못해도 그것 때문에 중국이 망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지 않으면 안되는 러시아와는 사정이 다르다. 대만을 침공하지 않고 변죽만 울리는 것이 오히려 내부적으로 시진핑 독재에 대한 반발세력을 막는 이익이 있기 때문에 지금 이대로가 시진핑 집권 세력에게는 가장 큰 이익이다.
게다가 대만을 침공할 경우 중국이 중앙아시아 패권을 인도에게 빼앗길 수도 있다. 위위구조(圍魏救趙) 빈집털이를 당할 수 있는 것을 시진핑이 모르지 않을 것이다. 빈집털이를 당하게 되면 중국의 일대일로 대전략이 무너진다.
대전략(大戰略)과 이를 위한 계략, 전술에서 미국과 서방은 중국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나는 현 국제정세를 신냉전 구도로 보면 절대 안된다고(한국과 미국, 서구의 입장에서 볼 때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는데 미국과 서구는 신냉전 구도로 보는 게 다수 견해인 것 같다. 그리고 이 미국과 서구의 견해를 한국의 전문가들이 그대로 비판없이 수용한다.
당장에 신냉전 구도에 따른 미국의 인도태평양 대전략은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여줬다.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축인 인도와 아세안 국가들이 미국편을 들지 않고 러시아편 내지 중립에 서면서 러시아가 지금과 같은 승리 구도를 가져갈 수 있었다.
왜 인도와 아세안 국가들이 미국 편을 들어줘야 하나? 그들은 전통적 비동맹 기조이고 실리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그런데도 아직 미국과 서구 그리고 한국의 전문가들은 신냉전구도 인도태평양전략을 운운한다. 실리를 보여줘야 할 미국은 트럼프와 바이든의 아메리카 우선주의로 인도태평양국가들을 배신하고 있다.
다만 최근에 약간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는 하는데 베트남과 아세안 쪽으로 미국이 실리 호혜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이 최근에 미국은 베트남과 최상위 정치외교관계인 포괄적전략적동반자 관계를 수립했다는 점과 반도체 등 미래 전략 산업 공장을 동남아에 짓기로 하면서 동남아에 실리를 제공하기 시작한 점이다.
또 최근에 미국은 인도와 불편한 관계를 시정하고 나섰다. 그게 중국의 일대일로와 똑같은 철도 도로 교통망을 인도에 설치해서 미국인도판 일대일로를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최근의 이러한 변화들은 신냉전 구도에 따른 사건들이 아니고 중첩적 다자주의 구도에 따른 사건이다. 미국과 한국에는 매우 바람직한 변화들이다. 물론 한국도 국가 대전략 중에서 신남방을 가장 중요한 부문으로 취급을 해야 한다는 전제 하에서다.
내가 윤석열의 공 중에 가장 큰 공으로 보는 것이 이재명 집권시 예상되는 무지막지한 확대 재정통화정책을 본인의 당선으로 막았다는 점. 그리고 중국을 고립 봉쇄하는 개념인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을 따르지 않고 중국과 공동번영하는 한국형 인도태평양전략을 수립하면서 베트남과 최상위 정치외교관계인 포괄적전략적 동반자관계를 수립했다는 점이다.
2023년 10월 부터 결국, 필자가 그려온 중첩적다자주의 구도로 국제정세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 긍정적인 현상이다.
참고로 중첩적 다자주의 구도는 인도의 국가 대전략의 전제인 다극주의 구도와는 좀 다르다. 중첩적 다자주의 구도에서는 아군의 적과도 아군이 될 수 있고 적군의 적과도 적이 될 수도 있다. 다극주의가 중첩된 것이 중첩적 다자주의다.
평판경제신문 발행인 겸 기자. 레마코리아 대표이사. 문화정책학·과학기술정책학 박사 과정 재학 중,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경제사상을 연구하면서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를 통합하는 포스트자유주의 이론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평판경제신문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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