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으로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소서

도덕을 요구하고 사람을 시험하는 방식으로는 신뢰 형성 안돼
이기심을 인정하면서 시스템적으로 신뢰를 구축해야 바람직

이승훈 승인 2024.02.22 22:14 의견 2
김밥 / 사진=pxhere


얼마전 어떤 벤처기업의 C*O직책 최고급 관리자가 쓴 것으로 보이는 게시물이 SNS에서 화제가 되었다.

내용을 보면 어느 포털사에서 야근하는 사람들을 위해 프리미엄 김밥을 제공했다가 일찍 퇴근한 사람들이 김밥을 가져가면서 정작 야근하는 사람들은 김밥을 먹을 수 없었다면서 결국 그 포털사는 김밥복지를 없앴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그 에피소드를 소개한 최고급 관리자는 김밥을 가져가지 말라면서 회사에서 직원들을 신뢰하고 김밥을 놓았는데 그 신뢰를 저버린 직원을 "해고해야 한다"는 다소 과격한 해법을 내놓았다.

물론 그정도의 행위가 해고 사유는 될 수 없기에 '신뢰'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다소 과장되고 과격한 발언을 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지만, 그 최고급 관리자의 태도가 옳은지 고민해볼 문제다.


특히 신뢰 자본 구축을 목적으로 하는 경영 관리 활동인 '평판관리' 에서는 위 사연 속의 최고급 관리자가 신뢰에 대한 이해가 옳은지, 적절한지를 살펴보게 된다. 신뢰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어야, 신뢰가 어떻게 해서 생겨나는지를 알고 있어야 신뢰를 쌓는 경영 관리 활동인 평판관리를 제대로 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야근자를 위한 김밥을 아무나 가져가서 모자랄 때, 올바른 대책은?

사연이 올라오자 네티즌들은 여러가지 의견을 냈다. 거의 모든 네티즌들은 포털사의 조치가 잘못됐다며 비판하고 있었고, 또 그 사연을 소개한 벤처회사 최고급 관리자가 김밥을 가져간 사람을 해고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크게 반발하고 있었다.

일찍 퇴근하는 사람이 자유롭게 김밥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해놓고 방치하는 것은 관리자가 책임을 저버린 것이라는 의견이 있었다.

김밥을 퇴근 시간 전에 미리 내어놓지 않고 퇴근 시간 이후 야근이 시작되기 전에 내어놓고서 야식 식사시간을 조정했다면 조기 퇴근자가 가져가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야근자들에게 김밥이나 아니면 다른 아무 간식이나 자유롭게 사먹을 수 있게 식비를 제공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일인데, 굳이 번거롭게 김밥을 사서 비치하는 것은 회사측에 뭔가 삥땅의 꼼수가 있는 것은 아니냐고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이는 자기가 다니던 회사에서 똑 같은 일이 있었다면서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했는데 CCTV를 설치했더니 일찍 퇴근하는 직원들이 김밥을 가져가는 일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했다.

CCTV를 통한 해법은 감시 감독 비용을 줄이고 동시에 도덕성을 강조하면서 도덕성에 대한 신뢰를 쌓고자 하는 게시물 속의 최고급 관리자가 어쩌면 동의하지 못할 해법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야근자를 위한 김밥이 모자라는 일은 해결했다.

또 어떤 이는 자기가 다니던 회사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면서 직원들이 간식이나 문구 소모품을 마구 가져가서 모자라는 경우가 많았는데, 애초 비치하던 양보다 두 배 이상 더 많이 비치해놓았더니 나중에는 아무나 가져가는 일이 없어졌다는 경험담을 소개하기도 했다.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소서

네티즌들은 신뢰를 이유로 도덕성을 시험하는 포털사 관리자를 비난했고 특히 신뢰를 저버린 직원을 해고해야 한다고 말한 벤처기업의 최고급 관리자를 비판했다.

아무나 가져갈 수 있도록 해놓고 사람을 시험에 들게하는 것도 마뜩치 않고, 해고까지 한다는 것은 관리자로서 옳은 태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 가져간 직원이 잘못한 것을 전체 직원이 책임을 져서 사내복지가 취소된다는 것도 옳지 않다고 한 목소리로 이야기 한다. 개인주의 성향이 뚜렷한 요즘 세대로서는 당연한 반응인 것 같다.

한편, 철학적으로 포털사와 벤처회사의 최고급 관리자를 비판하는 의견도 있다.

직원들에게 도덕성을 시험하면서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은 폭력적이라는 것이다. 즉 도덕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을 향한 내면적인 정언명령인데, 포털사와 벤처회사 최고급 관리자는 도덕을 타인을 향한 외부적 정언명령으로 취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도덕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을 향한 명령이어야 하지 타인을 향해 도덕적이 되라고 강요하고 사람을 시험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타인에게 도덕을 강요하는 사회는 전체주의 봉건적 사회라고 볼 수 있다. 타인에게는 자율적인 윤리와 타율적인 법을 지키라고 말할 수 있을 뿐.

요한 베커가 그린 임마누엘 칸트 초상화

신뢰는 도덕을 강요한다고 해서 생기지 않는다

그럼 과연 상호 신뢰는 어떻게 해서 생겨날까? 적어도 타인에게 도덕성을 요구하고 그래서 그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쌓여서 신뢰가 구축된다는 말은 경영관리 측면에서는 옳지 않다. 서당 훈장 선생님으로서는 그렇게 봐도 무방하지만 기업경영자로서는 그렇게 볼 수는 없다는 뜻이다.

경영관리의 일종인 평판관리 차원에서는 신뢰를 시스템의 관점에서 본다.

서구 사회에서는 신뢰도가 높다. 보통 선진국 사회의 신뢰도가 후진국 사회의 신뢰도보다 높다. 그런데 선진국 사람들이 후진국사람들보다 더 도덕적이어서 신뢰도가 높을까?

필자는 그 사회의 제반 시스템이 상호 호혜적인 시스템이어서 사람들에게 신뢰가 저절로 쌓였다고 본다. 도덕이 신뢰를 이끈 것이 아니라 시스템이 신뢰를 이끈 것이라는 뜻이다.

한편, 위에 소개한 포털사의 김밥 사례에서 포털사 최고급 관리자와 벤처회사 최고급 관리자는 사람의 이기심을 부정적으로 보고 신뢰 구축을 위해서는 먼저 이기심을 버려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비현실적인 태도다. 왜냐면 사람은 누구나 이기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기심을 버리라고 할 수는 없다.

경영관리, 평판관리에서는 사람들의 이기심을 인정한다. 다만 그 이기심의 방향을 조정해서 상대방의 이익이 자신의 이익과 부합되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본다.

이 때 상대방의 이익과 자신의 이익이 부합할 때의 이기심을 '셀프 인터레스트(self-interest)' 라고 한다. 영어시간에 배웠던 재귀대명사의 그 셀프(self)다.

이 셀프 인터레스트에 대해서 한국에서는 정확한 번역어가 없다. 이기심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상대방이 이익을 보건 해를 입건 상관하지 않고 자기의 이익만 챙기는 프라이빗 인터레스트(private-interest),

그리고 방금 소개한, 상대방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상대방의 이익과 자신의 이익이 부합하는 시스템 안에서 자기의 이익을 챙기는 셀프 인터레스트 (self-interest)가 있다. 필자는 이 셀프 인터레스트를 재귀적(再歸的) 이기심이라고 번역해 쓰고 있다.

상대방의 이익과 자신의 이익이 부합하는 재귀적 시스템 아래에서 그 재귀적 시스템에 따라 상대방과 관계를 맺으면 이 때 신뢰가 형성된다는 게 평판관리 입장에서 보는 신뢰관이다. 재귀적 시스템 아래에서 상대는 자연스럽게 이기적으로 행동할 것이고 그 이기적인 행동은 재귀적 시스템에 따라 나에게도, 서로서로에게 이익이 된다. 이것이 인지되고 체화되어 있을 때 신뢰가 구축된다.

신뢰가 구축되어 있는 사회에서도 그 재귀적 시스템이 무너지면 신뢰는 금방 무너진다. 데모와 폭동이 일어난 현장에서 상점의 물건을 훔쳐가는 서구 선진국의 모습들 보셨을 것이다. 그런 식이다.

노예를 꽉꽉 실은 노예선

셀프 인터레스트의 효과, 괴짜경제학

레빗과 더브너는 '괴짜 경제학'이라는 책에서 "경제적 유인은 상황을 극적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 놀라운 힘을 가진 자그마한 어떤 것"이라고 했는데 그것이 바로 셀프 인터레스트다.

18세기 말부터 영국에서는 호주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그러려면 사람들을 보내야 하는데 본국의 사람들은 열악한 호주로 가지 않으려 해서 결국 죄수들을 호주로 보내 개척하게 했다. 영국 정부는 배를 가진 선장들과 계약을 맺고 이송비를 지급한 뒤 죄수 이송을 맡겼다.

그런데 1790년부터 3년간 영국에서 호주로 보내진 죄수 4082명 중에 498명이 바다 위에서 목숨을 잃었다. 나중에는 호송된 죄수 중 평균 40%가 목숨을 잃었다. 위생이 엉망이었고 먹을 것이 부족해서 질병으로 죽은 것이다. 선장들은 죄수들에게 지급된 약품과 음식물을 빼돌려 팔면서 이익을 챙기기도 했다.

아무리 죄수라지만 호주를 개척하기 위해서 보낸 영국 시민들이 이렇게 많이 목숨을 잃게 되자 비판여론이 크게 일었다. 그래서 영국 정부는 죄수들의 처우를 개선하고, 도덕심과 신앙심이 깊은 선장을 선발하는 등 많은 아이디어를 짜냈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

이 때 사회개혁가 에드윈 채드윅이 한 가지 아이디어를 냈다. 선장들에게 미리 호송료를 주지 말고, 배가 호주에 도착했을 때 살아있는 죄수의 수에 비례해서 호송료를 주도록 한 것이다.

후불제를 적용하자 효과는 놀라웠다. 죄수들의 생존률이 40%까지 떨어졌던 것이 평균 98%까지 올라갔다.

호주 개척 당시의 풍경화

선장들이 더 많은 호송료를 받기 위한 이기심을 따라 배의 정원만큼만 죄수들을 태우고 깨끗한 위생 시설과 심지어는 좋은 음식도 제공했기 때문이었다. 약을 빼돌려 팔기보다는 죄수들에게 줘서 병을 고치는 것이 더 이익이 되었다.

이 때 선장이 발동한 이기심이 바로 재귀적 이기심, 셀프 인터레스트(self-interest)다. 나의 이익과 상대방의 이익이 합치되도록 하는 시스템 하에서 발동하는 이기심이다.

평판관리, 경영관리 나아가 국가사회적 차원의 정책 등은 이기심의 방향이 재귀적이 되도록 관리자들이 시스템을 구축해줘야 한다.

그저 근엄하게 도덕을 지키라고 이타적으로 행동하라고 말한다고 해서 사람들은 도덕을 지키지도 않고 이타적으로 행동하지도 않는다. 물론 일부는 매우 도덕적이고 영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집단 전체, 사회전체적으로 그런 사람들은 극소수다.

신뢰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어떻게 신뢰를 축적하는지는 입장마다 상황마다 다른 생각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처음에 소개한 '포털사 김밥' 사례 처럼 시스템과 이기심을 도외시하고 사람들에게 도덕적이 되라고 강요만해서는 신뢰가 쌓이지 않는다. 직원들을 시험하는 것은 관리자로서는 더더욱 해서 안될 행동이다.

김밥을 가지고서 어떻게 신뢰를 쌓을 수 있을까요? 좋은, 유능한 관리자가 되기란 정말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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