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e and See> 휴머니즘 전쟁영화의 걸작...우크라이나 전쟁 2주년, 어디서 이 영화를 상영한다.

푸틴은 이 영화를 어떻게 볼까? 아마도 리얼리즘 영화로 생각하며 보지 않을까 싶다.

이승훈 승인 2024.02.25 17:24 의견 0
소련 영화 Come and See (1985)의 한 장면


영화가 잘 만들어졌고 작품성이 뛰어나기도 한데, 그런데 보고 있노라면 괴로운 영화들이 있다.

필자같은 경우는 미즈 미켈슨 주연의 '더 헌트(2012)'라는 영화가 그런 영화다. 영화를 보고 나서도 한참동안 괴로웠다. 군중들의 오해와 폭력 내지 광기 속에서 한 인간이 무너지는 모습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괜히 봤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러나 영화는 참 잘 만들어졌다.

소련이 1985년 나찌를 비판하기 위해서 만든 전쟁영화 'Come and See'도 마찬가지로 영화는 아주 잘 만들어졌지만 실제로 보려면 아주 괴롭고 불편할 영화다. 그 영화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찾아보려면 볼 수 있었지만, 필자는 아직 보지 않았다. 보기가 너무 괴로울 것 같아서.

나찌가 벨라루스 지역을 퇴각할 때 벨라루스 초토화 작전을 펼쳤다. 당시 초토화 작전의 결과 벨라루스(소련) 민간인 223만 명이 학살당했다. 그 참혹한 벨라루스 대학살을 반전주의에 입각해서 묘사한 영화다.

특별히 잔인한 장면 없이, 가장 건조하면서도 가장 참혹하게 묘사한 전쟁 영화의 걸작이다. "전쟁의 참혹함을 묘사한 여러 서구 영화를 장난 수준으로 만들어버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의 영화비평가 로저 이버트는 'Come and See'를 보면서 "나는 인간의 악을 묘사하면서 이보다 더 무자비한 영화를 거의 본 적이 없다. ”라고 감상평을 남기기도 했다.

필자 역시 단편 클립을 몇 개 보기는 봤는데 정말 무자비하다. 학살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바로 옆에서 학살당하는 것을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감히 직시할 수 없다.

이 영화는 리얼리즘 영화가 아니라 휴머니즘 영화다.

르네상스 인본주의 휴머니즘에서 부터 현대의 포스트모던 휴머니즘까지 휴머니즘은 매 시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지만 그 모든 형태의 휴머니즘을 관통하는 요소는 인간 현실에 대한 직시다. 참혹하고 모순으로 가득찬 인간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것이다.

반면에, 리얼리즘은 원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자는 사상 내지 표현으로 알려졌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고 또 정확한 정의도 아니다.

문화정책학에서는 리얼리즘은 지배층의 이익을 위해 현실을 그럴듯하게 조작해서 대중이 현실을 직시하고 있는 것과 같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래서 리얼리즘이 보여주는 내용이나 방식은 보기에 불편하지 않다.

우리가 어떤 TV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그것 참 리얼한데!"라고 할 때 관객은 그것이 리얼,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리얼하다"라고 말한다. 즉 리얼하다는 것은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리얼리즘은 오히려 편안하다. 리얼리즘은 기득권 옹호이고 체제 순응적인 것이기 때문이고 현실이 아닌데 현실인 것처럼 대중을 교묘하게 기만하는 것이 리얼리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휴머니즘은 현실 직시이기에 매우 불편하다. 당장에 보기를 거부하고 싶을 정도로.

이렇게 휴머니즘의 본질이 인간세상의 참혹한 모순과 부조리를 직시하는 것인데(휴머니즘은 동정, 연민이 아니라 현실직시다) 휴머니즘이 그토록 어렵다는 것을 바로 이 'Come and See'가 웅변하고 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 '소련 영화'를 어떻게 볼까? 아마도 리얼리즘 영화로 생각하며 보지 않을까 싶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2주년에 저 어디 영화관에서 'Come and See'를 상영한다는 소식에 짧은 글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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