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헌 선생이 쓴 책 <명리>의 원래 제목은 <강헌 좌파명리>였다. 그런데 출판사에서 독자층을 넓히려고 한 듯 제목에서 필자명과 '좌파'를 빼고 <명리>로 정해 출판했다. 제목이 간결하니 강렬한 느낌을 준다.
강헌 선생은 자신의 명리학 체계를 '좌파 명리'라고 하고 '좌파 명리학자'라고 자처한다. 강헌 선생이 왜 자신의 명리학을 좌파 명리학이라고 했는지는 일전에 팟캐스트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왜 좌파 명리인가. 명리학이 천 년 전에 탄생할 때 그것은 왕조 체제의 존속을 전제로 한 전형적인 우파 학문이었다. 하지만 이 운명의 학문은 민초들의 품에 안기면서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지 않다'는 체제 변혁 사상의 토대가 된다. 그런데 20세기에 들어와 한국에서 이 명리학은 식민지와 가난, 분단과 전쟁을 겪으며 '나부터 살고 보자'는 기복적 미신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그러나 나는 지금-여기의 명리학이 공화정 시대에 걸맞은 이념, 곧 모든 인간은 저마다의 존엄한 가치를 지닌 존재라는 진리에서 출발해야 된다고 믿는다. 이런 생각에서 만들어진 개념이 바로 좌파명리이다."
외람되게 강헌 선생의 좌파 명리의 개념을 비판하자면, 강헌 선생이 역사를 보는 관점은 옳다. 그런데 보편적이고 엄밀해야할 정치경제적 개념어인 우파와 좌파라는 용어의 개념을 자의적으로 정하고 있다. 그 점에서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
즉 강헌 선생은 우파를 전체주의 왕정 체제의 정치경제 이념으로 국한 시키고 있다. 그리고 공화정과 자유주의, 민주주의 등 인류 역사가 진보를 통해 이룩한 이념적, 제도적 성취물들을 좌파의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저마다의 존엄한 가치를 지닌 존재"라는 인간관은 바로 자유주의의 인간관이다. 자유주의는 기본적으로 좌파 보다는 우파에 더 친하다. 부연하자면 "모든 인간은 저마다의 존엄한 가치를 지닌 존재"라는 인간관은 현대에서는 좌파와 우파의 구별없이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인간관이다
이러한 자유주의의 인간관을 더 발전시킨 인간관이 신자유주의의 이중적인간관이다. "인간은 존엄성에서 모두 동일하며 인간은 개성에서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블런델과 고스초크 등 현대 정치경제사상가들은 좌파란 '공동체주의적 관점에서 사회 시스템, 생산 수단을 국가나 공공이 관리하고 통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는 입장이라고 정의한다. 우파란 '개인주의적 관점에서 사회 시스템, 생산 수단을 시장이나 민간이 관리해서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한국에서는 개인주의적 문화가 얕아서 개인주의를 이기주의와 구별하지 못하고 이기주의와 같은 것으로 취급하지만, 교환과 거래와 협업이 고도화되어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생활화된 서구의 세계최고선진국들이 모두 철저한 개인주의 사회라는 것을 봐도 개인주의는 이기주의는 거리가 멀고 개인주의는 오히려 이타주의에 가깝다.
현대 정치경제사상명리학의 전반적인 이론 체계, 사상 체계를 보면 명리학 자체는 우파다.
명리학의 가장 중요한 격언 중의 하나가 '식상승재관(食傷勝財官)'인데, 이 말을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규제하는 것(재관)보다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식상)이 더 낫다'라는 뜻이다. 자유주의 우파, 신자유주의와 친한 발상이다.
재관적인 것과 식상적인 것의 개념 이해를 돕기 위해 사례를 가지고 오면...
사례1:특정 지역에 범죄가 많아 치안이 불안하다.
재관의 방식:형벌의 강화, 풀타임 보안가이드 고용. 범죄인을 검거해서 범죄를 줄임.
식상의 방식:현직 경찰관에게 특정 지역에 무료로 주거 제공하여 경찰의 노출 빈도 제고. 빈곤을 퇴치해서 범죄를 줄임.
사례2:엘리베이터가 느리다.
재관의 방식:고속 엘리베이터의 설치, 지정층만 서는 익스프레스 엘리베이터 도입.
식상의 방식 : 엘리베이터 옆에 거울 설치.
사례3:공장 제품에 불량이 많다.
재관의 방식 : 생산성 컨설턴트 채용. 불량품 만큼 직원에 불이익을 줘서 불량품 감축
식상의 방식:공장 직원들의 호칭을 '노동자'대신 '기술자'로 변경. 성과에 비례하는 보상을 지급해서 불량품 감축.
재관의 방식은 쉽고 즉효적이다. 재관의 방식에 의해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나 비용의 문제가 발생한다. 식상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면 비용과 갈등을 줄이고 선순환을 이끌어 내므로 지속가능성이 생긴다.
부담해야할 비용에는 한도가 있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행동하려면 식상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다고 무조건 식상의 방식을 고수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중(中)의 원리에 어긋난다. 다만 한계적(marginal)적용을 위해 식상의 방식을 우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식상의 방식으로 되지 않을 때 재관의 방식을 가져오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렇게 명리학은 식상의 방식이 재관의 방식보다 낫다고 보는데 재관의 방식이 바로 좌파적 방식이고 식상의 방식이 바로 우파적 방식이다.
경세학이고 정치학인 동시에 인간학인 명리학은 좌파적 재관적 방식보다 우파적 식상적 방식이 낫다고 하고 있기 때문에 필자는 명리학을 우파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백광부 신역학 연구소장
편집자 주 : 백광부 소장이 과거 개인 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일부 수정해서 다시 기고한 글입니다.
저작권자 ⓒ 평판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