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인에게 사죄할 기회를 주는 이유

대표자격 박탈하자는 홍준표 시장의 주장이 바람직하지 않은 이유

이승훈 승인 2024.03.12 04:37 의견 0
이강인이 영국 런던으로 찾아가 손흥민에게 사과한 뒤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강인(파리 생제르맹)이 황선홍 호에 합류했다. 많은 네티즌들이 예상한 대로였다.

황선홍 감독은 11일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태국과의 2연전에 참가할 대표팀 멤버 23명을 발표하면서 논란을 일으킨 이강인을 포함시켰다.

(이강인의 대표 발탁을 반대하는) 네티즌들이 황선홍 감독 선임을 반대한 이유 중 하나는 황선홍 감독과 이강인의 관계가 끈끈하고 이에 따라 황선홍 감독이 이강인이 논란을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이강인을 발탁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였다.

물론 필자는 네티즌 의견을 소개하면서도 감독의 자리는 보편주의(유니버셜리즘) 가치관이 필요한 자리여서 모름지기 실력을 인정받은 감독이라면 개인적인 특수 관계를 초월해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태도를 기본으로 깔고 있어서 이강인을 발탁할 이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점도 소개했다.

그리고 보편주의 가치관에서는 잘못된 행위를 반성, 사죄할 기회를 적어도 한 번은 주기 때문에 어떤 이유로든 이강인이 발탁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평판관리 측면에서 이번 이강인 사건을 보면 평판에 위기를 겪고 있는 사람들(평판객체)은 둘이다. 첫째 이강인, 둘째 축구협회. -클린스만 감독은 이제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기 때문에 특별히 위기를 관리해야 할 처지는 아니다-

다만 축구협회의 잘못은 누구나 다 인정하고 있고 축구협회는 구성원을 교체하는 것 외에는 평판관리 측면에서의 해결책이 사실상 무의미하므로 논의에서 배제하기로 하자.

평판관리는 일관성 회복을 목적 삼아 그 태도를 관리한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평판에서 잘못된 행위나 루머, 가짜뉴스 등으로 대상에 대한 평가들이 달라졌을 때 이 평가들을 모순 없이 다시 원래대로 회복시키는 것이다. 그중에서 평판객체의 태도의 일관성이 중요하다. 태도의 일관성이 유지된다면 평가를 회복시킬 수 있는 기회를 계속 부여받는다.

이강인의 경우 본인이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런데 원래대로 '신뢰받는 국가대표 이강인'이라는 평판을 회복하려면 잘못된 것아 무엇인지 정확하게 정의해야 한다.

평판관리에서 사과를 할 때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강인의 첫 사과는 이 점을 밝히지 않아서 사과가 잘못됐었다.

이 때 필자는 이강인의 잘못을 정의할 때 '싸가지'라는 (후배에게만 적용되는) 일방향적 수직적 권위주의 가치를 지키지 않은 것을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고 쌍방향적 수평적 상호존중의 가치를 지키지 않은 것과 Disagree and Commit 원착에서 Commit를 지키지 않은 것을 잘못이라 봐야 타당하다고 논증했다.

보편주의 관점에서 사죄의 기회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부응하는 행위를 하지 않고 배신한다면 일체의 평판관리가 소용없다. 태도의 일관성이 깨졌기 때문이다. 회복할 기회는 사라졌고 더 이상 판단할 가치가 없어진다. 그래서 사죄할 기회를 준다는 것이 결코 만만하지 않다.

그러나 이번에 이강인을 징계하면서 사죄할 기회를 주지 않고 대표 선수 자격을 (영구)박탈한다면 태도의 일관성을 확인할 기회가 사라진다. 그러면 어떤 결과가 나오나?

구성원 간의 갈등과 불화는 장기간 지속된다. 사과를 이끌어내는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고 모두가 제각각 마이웨이로 간다. 결국 제도적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저해하고 조직, 사회 발전을 방해한다.

평판관리는 사과를 매우 중요시한다. 사과라는 것을 사회 구성원 간의 용서와 화합을 이루는 중요한 과정으로 보기 때문이다.

사과, 사죄를 할 기회를 주지 않으면 이러한 용서와 화합을 이끌어내는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음으로써 사회적 책임감을 함양하고 공동체의 화합을 이루는 계기를 잃는다. 개인뿐만 아니라 대표팀이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할 기회를 잃는다.

사죄할 기회를 주지 않는 조직은 그런 좋은 기회를 모두 날리면서 그 대신 억압적인 분위기를 확산시킨다. 유연함과 창의가 필요한 조직으로서는 좋은 성과를 내기가 어려워진다.

이런 결과들을 두고 어느 선택이 축구 국가대표팀에 바람직한 선택인지 다시 한번 판단해 보자.

특수주의자(커뮤니태리언)인 홍준표 시장 말대로 한 번의 잘못으로 대표 자격을 (영구) 박탈하는 것이 옳은 선택인지

보편주의자(유니버셜리스트)인 황선홍 감독처럼 (아마도 거스 히딩크 감독이나 박항서 감독처럼) 사죄할 기회를 한 번은 주는 것이 옳은 선택인지.

발생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고려할 때, 잘못을 한 선수에게 사죄할 기회를 한 번은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기회를 날리면 그때는 끝이다. 냉정하고 단호하게.

태도의 일관성을 잃어버린 사람이라면 그를 용서하지 않아도 그에게 사죄할 기회를 주지 않더라도 공동체의 화합을 이루는 계기를 잃지는 않으며 조직과 사회가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할 기회는 여전하다.

혹자는 손흥민이 이강인을 용서한 것에 대해서 "그럼 손흥민이 이강인을 징계하고 대표팀 박탈을 하자고 하겠나?"라면서 어쩔 수 없이 용서하는 척을 한 것이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엔 손흥민은 보편주의자이고 위에서 말한 여러 가지 사정을 다 고려해서 이강인을 용서한 것이라고 본다. 즉 진심으로 용서한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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