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갈등, 폴리티션과 스테이츠맨의 갈등관리 차이

갈등관리에서 최우선 원칙은 갈등이 최악으로 치닫는 것을 막는 것
의사가 과로로 목숨 잃고 뺑뺑이 돌던 소아 환자가 목숨 잃는 것 막아야

이승훈 승인 2024.04.02 19:01 의견 0
윤석열 대통령이 1일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며 의정갈등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사진=대통령실


국회의원 등 정치인이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 즉 '민의'라는 것을 반영할 때 크게 두 가지 기조가 있다.

하나는 직접민주 원리에 따라서 현안을 미시적으로 보며 지역구민 내지 자신의 지지기반의 의사만을 직접적으로 대변하는 것. 이를 의사대리라고 한다.

또 하나는 간접민주 원리에 따라서 현안을 거시적으로 보며 전체 국민 및 자신의 지지기반이 아닌 유권자의 의사까지 간접적으로 대변하는 것. 의사대의라고 한다.

영미계 국가에서는 직접민주 의사대리의 기조를 가진 정치인을 부정적인 뉘앙스를 담아 폴리티션 (politician)이라고 하고, 간접민주 의사대의의 기조를 가진 정치인을 긍정적인 뉘앙스를 담아 스테이츠맨(statesman)이라고 한다.

대륙계 국가(프랑스,독일,일본) 쪽에서도 비슷한 관점을 가지고 있다.

헌법학자 허영 교수의 책에 보면, 프랑스 국민들을 정치적 의식 수준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평하고 있는데 그 프랑스 국민들은 직접민주제·원리를 혐오한다고 한다.

직접민주주의, 직접민주 원리를 무조건 좋게만 보는 사람들은 프랑스 국민들의 태도를 잘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직접민주주의가 민주적 정당성을 상실한 간선제 '체육관 선거'의 폐해를 종식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만, 형식적(절차적)민주주의가 완성된 이후 사회가 복잡다단해지고 민주주의의 수준이 고도로 높아지면 사정은 달라진다.

직접민주제 원리에 따르면, 마치 대리인(代理人)이 본인(本人)의 의사만을 대리하는 것처럼 정치인이 자신을 지지하는 정치 집단의 의사만을 대리하여 민의를 정치에 반영하게 된다.

이럴 때 정권을 잡은 정치 세력은 자신을 지지하는 정치 집단의 의사만을 정치에 반영하다 보니 소수세력, 약자의 의사가 정치에 반영되지 못하게 되는 부작용이 생긴다.

즉, 다수에 의한 소수에 대한 억압이 나온다는 이유에서 직접민주제 원리를 비판적으로 본다. 차이와 소수성의 가치를 높게 치는 프랑스 국민들로서는 이러한 다수의 횡포를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의대증원 이슈가 강 대 강 치킨게임으로 고착화되면서 벌써부터 최악의 상황이 나타날 것 같은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의사가 과로로 목숨을 잃고 뺑뺑이 돌던 소아과 환자가 병상이 없어 목숨을 잃었다. 매우 위험한 징조다.

평판관리(정책학의 일종, 행정학과 경제학의 융합)차원에서 보면 위기관리, 갈등관리가 잘못된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의사도 책임이 있지만 갈등관리의 최종책임자인 대통령에게 책임이 더 크다.

현재 중립적인 위치에서 갈등관리의 최고책임자 역할을 해야 할 대통령이 갈등의 일방 당사자가 되어있다. 대통령의 지위가 중복되는 상황이어서 갈등을 풀기가 매우 어렵다.

그럴수록 대통령이 고도의 정치적중립성을 가지고, 열린 태도로 대화와 타협의 장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1일,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는 2000명을 고수하면서 타협을 부정하는 내용이었다.

일각에서는 "의사단체가 합리적인 대안을 가져오면 얼마든지 정부 정책 바꿀 수 있다"는 표현을 들어 대통령의 열린 자세가 보인다고 높게 평가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담화에서 2000명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뉘앙스의 표현이 계속 나왔다는 점이 문제다.

의사 수 2000명 증원이 논란이 된 갈등에서 그 2000명에 대한 대화와 타협의 여지를 봉쇄하면 열린 자세라고 하기 어렵다.

그러자 마포을 지역구의 함운경 국민의힘 후보가 대통령에게 "행정과 관치의 논리에 집착할 것이라면", 즉 대화와 타협의 장을 만들지 않고 일방향으로만 몰고 갈 것이라면 "국민의힘 당원직을 이탈해 주시기를 요청한다"고 말해 여당 내의 갈등이 격화됐다.

현재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야권과 여당 내에서도 함운경 후보, 안철수 후보, 한동훈 위원장 등이 정원 2000명에 대한 집착을 풀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에 홍준표 시장은 대통령의 입장에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불분명하고 다만 당 내부의 의견 충돌(소위 내부총질)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함운경 후보에 대해 "근본이 없다"면서 맹비난하고 있다.

그 밖의 정치인들은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그러나 모든 국민들의 크리티컬한 이슈인데 갈등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지역구 출마 후보가 이를 우려하는 게 잘못된 행동일 수 없다.

오히려 필자는 국회의원이나 국회의원 직에 출마하는 후보자라면 여당야당 소속 정파를 불문하고 당연히 함운경 후보처럼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본다.

함운경 후보와 홍준표 시장은 민주주의에 대한 관점, 민의 반영의 기조, 갈등에 대한 관점, 세계관 등등이 서로 다른 것 같다. 그런데 홍준표 시장처럼 갈등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고 다른 것을 틀렸다는 식으로 보면 곤란하다.

어쨌든 당내 갈등이 격화되자 그날 저녁 대통령실은 "대타협 기구에서 모든 정원 문제까지 포함해서 모든 걸 의논할 수 있다는 것이 대통령의 담화 내용"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함운경 후보도 다시 대통령의 탈당 요구를 취하했다.

대통령의 확답이 없는 것은 아쉽지만 일단 대통령실의 말대로 '대타협 기구에서 모든 정원 문제까지 포함해서 모든 걸 의논할 수 있다'는 것이 대통령의 입장이라면 이제 공은 의사단체로 넘어갔다. 의사단체가 호응해서 입장을 밝힐 차례다.

이번 사안에는 많은 갈등이 존재한다. 의사협회와 정부, 여당과 야당, 여당 내에도 함운경 후보 같은 부류, 홍준표 시장 같은 부류.

- 다만 필자가 함운경, 안철수, 한동훈, 이재명 등을 스테이츠맨, 홍준표를 폴리티션이라고 단정한 것은 아니다. 이번 사안에 대한 민의 반영 기조를 볼 때 간접민주 원리, 직접민주 원리에 의존하는 양상이 두 그룹에서 조금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고 말한 것뿐이다.-

갈등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면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는다. 갈등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국민 전체의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이슈에서 여야와 정파의 다름이 있을 수 없다.

갈등관리에서 최우선 원칙은 갈등이 최악으로 치닫는 것을 막는 것이다. 의사가 과로로 목숨을 잃고 뺑뺑이 돌던 소아과 환자가 병상이, 의사가 없어 목숨을 잃는 이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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