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영웅 테일러 스위프트 vs. 맬서스 빌런 타노스...지속가능성의 해석 차이

지속가능성에 대한 신자유주의 관점과 환경생태주의 관점의 차이

이승훈 승인 2024.04.07 11:09 의견 0
테일러 스위프트는 막대한 탄소를 발생시키는 자가용 제트기를 스윗하게 타고 다닌다.


일단의 진보 좌파들의 친환경 논리는 화석연료를 '그냥' 쓰지 말자는 것이다.

왜 그렇게 급진적이고 근본주의적일까? 환경을 너무나 중요하다 생각한 나머지 '핍진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꾸미려는 것일까? 아니면 진심으로 하는 말일까?

한 좌파 매체의 메일링 서비스를 받아보는 데 방금 읽은 내용이...

"시민 소비가 온실가스 배출의 주된 원인”이라고 경고하는 뉴스였다. "온실가스 배출 중 60~75%는 시민들의 교통, 음식, 의복, 에어컨 소비와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여기에다 급진 페미니즘의 관점까지 더해서 "남성의 탄소 배출량이 여성의 탄소 배출량보다 더 많다"는 사실도 뜬금없이 강조하면서 은근히 이들을 비난한다.

그러면서 대안은 이용을 하지 않는 것이라는 것으로 결론을 내고 있다. "화석연료 내연기관 자동차 타지 말자 걷자, 자전거 타자, 특히 비행기를 타지 말자..." 과연 바람직한 대안일까?

필자가 오늘(7일) 받아본 뉴스 메일링 서비스 일부


필자는 진보좌파들을 평가할 때 목적에서 옳지만 수단에서 잘못됐다고 본다. 정치경제 사조 중의 하나인 신자유주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자본, 노동, 정보의 자유 이동을 강조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신자유주의자들은 세계화와 작은정부, 구조개혁, 시장 유연성을 강조한다. 신자유주의자들은 목적에서 좌파적이지만 수단에서는 우파적이다. 신자유주의자는 좌파도 아니고 우파도 아니지만 수단이 중요하므로 일단 우파라고 치자.-

진보좌파들은 규제를 규제만으로 본다. 좌파들에게 있어 규제는 절대선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우파는 규제를 혁신의 계기로 본다. 그래서 신자유주의 우파는 규제를 선으로 본다. 일반적인 보수우파들이 규제를 악으로 보는 것과는 다르다.

즉 신자유주의자들은 환경 규제를 통해서 탄소포집기술의 혁신, 재생에너지 혁신 등등 여러 혁신을 이룰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 규제를 무조건 악으로 보지는 않는다. 비행기의 경우는 바이오신소재 혁신을 통해서 바이오제트 연료의 개발 등등을 이룰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비행기를 계속 타고 다니고 설령 당장은 화석연료 내연기관 자동차를 탈지라도 빨리빨리 이동해야 경제가 성장하고 기술이 발전하고 혁신이 이뤄지는 거지 안 쓰고 활동을 하지 말자고 하면 경제 활동과 혁신에 지장이 생긴다.

일단의 환경주의(생태주의) 좌파들은 자가용 제트기를 타고 다니는 테일러 스위프트를 탄소 악당이라고 비난한다. 탄소악당 1위라는데 사실 테일러 스위프트 보다 자가용 제트기를 더 많이 타고 다니는 기업인들도 많다.

게다가 테일러 스위프트는 자가용 제트기를 타는 것만큼 탄소배출권을 자발적으로 구매해왔고 구매량도 환경주의자들이 요구하는 것의 두 배 이상을 구매해왔다.

이러면 테일러 스위프트는 신자유주의 우파적인 관점에서 보면 탄소 영웅이다. 그런데 환경주의 좌파들은 테일러 스위프트가 자가용 제트기를 탄다는 것만으로 탄소 악당이라고 부른다.

탄소 영웅 테일러 스위프트 vs. 맬서스 빌런 타노스

어떤 환경주의자가 아래와 같은 시를 썼다.

인간이 깨끗해지면 환경은 더러워지고,

인간이 아름다워지면 환경은 추해지고,

인간이 건강해지면 환경은 병들고,

인간이 편안해지면 환경은 불편해지고,

인간이 행복해지면 환경은 불행해진다.

많은 사람들이 그 환경주의 시인을 칭찬한다.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 그리고 인간과 환경의 시적 대조, 대립이 보기에 좋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렇게 인간과 인공물, 기술사회의 진전을 환경에 대해 상호 제로섬관계로 생각하는 것을 생태근본주의(extreme radical ecology)라고 한다. 이런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사고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마블 세계관의 타노스, 킹스맨의 발렌타인이다.

맬서스 주의자 발렌타인 (사진 중앙)


당장에 시드니의 아름다운 인공 구조물을 보면 이들 타노스주의자, 발렌타인주의자들의 주장은 반박된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인공 구조물'이 환경에 反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시드니의 아름다운 빌딩숲과 오페라하우스, 하버브릿지와 같은 인공구조물을 보면서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인공구조물로 인해 환경은 편해지고 더 아름다워지고 지속된다.

인간과 인공물 내지 기술사회가 질적으로 양적으로 발전하고 커질 때 환경과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고안해낸 개념이 바로 '지속가능성'이다.

이 지속가능성에 대한 개념은 각자 정치경제적 입장에 따라 다르게 정립되고 있다. '인간이 소비하는' '자원'과 관련한 환경의 문제는 매우 복잡하다. 정밀한 수학적 계산도 필요하다.

정치경제사조의 하나인 신자유주의 우파들은 자연과 환경에 인간의 개입과 개발을 통해 인간의 효용을 증대시켜가면서도 '미래세대의 환경 효용이 감소되지 않는다면' 지속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그것이 진정한 환경보존이라고 본다. 무조건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시드니처럼, 최대한 이용하면서 보존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우파는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이상 자기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논리로 신자유주의 입장에서 보면 미래세대의 환경 효용이 감소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현재 세대가 환경을 이용하고 개발할 수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인구가 늘어나고 어족자원 소비가 늘어나서 사람들이 소비하는 물고기의 양이 자연에서 생산되는 물고기보다 훨씬 많아졌을 때, 소비되는 물고기의 대부분을 자연산 대신 양식으로 소비하도록 해서 자연에서 생산되는 물고기가 감소되지 않는다면 신자유주의자 우파들은 이러한 물고기 소비도 지속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신자유주의자들이 정의하는 '지속가능성'은 오버하지 않고, 미래세대에 손해를 주지 않는 한 최대한 자원을 쓰는 것이다. 그 상태를 전문용어로 '스윗(Sweet)하다'라고 한다.

신자유주의자들이 보기에는 테일러 스위프트는 너무나도 '스윗하게'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다닌다. 탄소배출권을 충분히 구매해서 지속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시드니

생태주의자들은 생태근본주의까지 가지 않더라도 이러한 신자유주의적인 (저쪽에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이쪽의 이익을 최대로 챙기는) 지속가능성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환경주의, 생태주의 좌파들은 무조건 안 쓰고 원형 그대로, 자연 그대로, 보존하는 게 지속가능성이고 환경보존이라고 본다. 그것이 아름답다고 본다.

혹, 시드니가 더럽고 추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심미안에 대해서는 필자로서는 반박불가다. 그냥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이 다르구나'하고 논의를 끝낼 수 밖에 없다.

메일링 뉴스 서비스를 보낸 페미니스트 환경생태주의 좌파 편집장은 "전기자동차(자가용)도 소용없다. 친환경 버스를 타고 걷고 자전거를 타야 한다" "비행기 여행을 중단하자"는 제안까지 하고 있었다.

생각이 다르다고 그냥 접어버리기엔 '과연 바람직할까? 얼마나 참여할까? 실효성이 있을까?'이런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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