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근로자의 월급을 떼어서 그 돈으로 중소기업 근로자의 월급을 늘려주자는 사회연대임금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대기업 근로자가 월급을 많이 받고 중소기업 근로자가 월급을 적게 받으면 불평등이 커져서 문제라고 보고서 사회주의적 연대의식을 가지고 대기업 근로자가 임금을 양보해서 어렵게 사는 중소기업 근로자를 도와주자는 것인데...
이러한 사회연대임금제가 성공하기 위한 조건이 있다. 먼저 강력한 산별노조가 있어야 한다. 그다음으로 노·사·정 위원회에 대한 이해관계자 모두의 정치적 신뢰가 굳건해야 한다.
한국의 현 상황을 보면 산별노조가 유명무실해서 사회연대임금제는 성공하기 어렵다. 거의 불가능하다. 노·사·정 위원회에 대한 신뢰도 문제이지만 신뢰가 아무리 높아진다고 해도 강력한 산별노조를 만들어 노동자 대부분이 가입하도록 관철시키는 것은 한국이 사회주의 국가가 되지 않는 이상 현재로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제사적으로 보면 사회연대임금제를 도입한 사례가 없지는 않다. 바로 스웨덴에서. 찰츠요바덴 협약의 배경 아래 생겨난 랜-마이드너 모델이다.
찰츠요바덴 협약은 1938년 스웨덴의 노·사·정인 생산직노조전국중앙조직(LO)과 사용자연합(SAF)이 체결한 협약으로, 당시 집권 사민당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체결될 수 있었다.
찰츠요바덴 협약에 따라 노동계는 거대 재벌인 발렌베리 가문의 기업 등 주요 기업의 국유화 주장을 포기했고, 임금인상 투쟁을 자제하기로 했으며 기업들은 대폭적인 기업소득세 인상과 노동자 복지 지출을 받아들이면서 직장폐쇄를 자제하기로 했다.
찰츠요바덴 협약의 연대 전통은 1951년 렌-마이드너 모델(Rehn-Meidner Model)로 이어진다. 렌-마이드너 모델이 바로 사회연대임금제를 구체화한 대표적인 사례다.
렌-마이드너 모델은 스웨덴 노동조합총연맹의 렌과 마이드너가 제안한 것으로 월급이 많은 대기업 노동자의 월급을 떼어내서 그 돈으로 가난한 중소기업 노동자에게 월급을 보태주는 것이다.
이렇게 사회 전체적으로 연대 의식을 가지고 임금격차를 줄이자는 게 렌-마이드너 모델이다. 렌-마이드너 모델은 같은 성격과 같은 가치를 지닌 노동에 대해서는 같은 액수의 임금을 주어야 한다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되었다.
진보진영에서는 렌-마이드너 모델의 사회주의, 연대 측면만을 설명하지만, 렌-마이드너 모델에는 그 외에도 지속가능성을 위한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적 요소, 즉 경쟁을 활성화하는 측면도 있다.
렌-마이드너 모델은 대기업의 일자리 창출을 유도하며 중소기업 중 임금 인상을 감내할 수 없는 자영업과 영세기업의 퇴출과 산업구조조정을 유도하면서 완전고용을 목표로 노력한다. 또 경쟁을 용인해 정부의 긴축재정통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을 용인하는 대신 적극적노동시장 정책을 추진하도록 한다.
힘이 약한 중소기업, 자영업이 대기업과의 무한 경쟁에 의해 퇴출되고 이로 인해 성장한 대기업은 중소기업에서 해고된 노동자를 흡수하게 되면서 전체적으로 모두가 성장하게 된다.
이는 중소기업의 보호만 치중하고 확장적 재정통화정책을 고수하고자 하는 한국의 진보진영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이라 할 것이다.
스웨덴 특유의 사회주의(내지 사민주의) 전통에 따라 찰츠요바덴 협약과 렌-마이드너 모델은 한때 성공을 거두었으나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거시경제 환경이 급변함에 따라 정책 타당성을 잃고서 사라지게 된다.
대기업 노동자도 자기의 '목구멍이 포도청'인지라 자기가 일해서 얻은 임금을 저소득 노동자에게 양보하려고 하지 않았고, 생산성이 낮은 기업의 노동자에게 생산성과 무관하게 약자라는 이유만으로 평등을 위해서 임금을 높여주다보니 기업의 지속가능성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스웨덴에도 불어닥친 신자유주의 세계화 흐름에 따라 산별노조와 전국중앙조직의 힘이 줄어들면서 스웨덴의 사회연대임금제는 자연스럽게 자취를 감추었다.
그런데 스웨덴에서도 사라진 사회연대임금제가 한국에서 가능할까?
과연, 억대 연봉을 받는 한국의 대기업 정규직들이 자기 연봉에서 몇천만 원을 덜 받고 그걸 하청 재하청 비정규노동자에게 나눠주는 것을 찬성할까?
과연,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앞으로 임금투쟁을 중단하고 사 측을 믿을까?
과연, 대기업 사용자 측은 과연 임금투쟁하지 않는 노조에 감사하고 비정규직 일자리를 정규직으로 늘려주고 하청회사 근로자들의 임금을 높여주도록 하청 회사에 압력을 넣을까?
과연, 중소기업 노동자들과 중소기업 경영자들은 중소기업 보호를 중단하는 정책을 찬성할까? 구조조정을 찬성할까?
과연, 공기업 직원들과 공무원들은 긴축재정통화 정책을 찬성하고 '철밥통'을 포기할 수 있을까?
하나도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사회연대임금제는 한국에서는 실현가능성이 없는 사회주의적 대동세상 이상에 불과하다.
조국혁신당의 조국 대표는 지난 총선 국면에서 이러한 사회연대임금제에다가 국가의 확장적 재정통화 정책을 전제로 한 세제지원을 결합시킨 한국형 사회연대임금제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국가가 세제 지원을 해준다면 어디에, 누구에게 해준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는데 대기업에게 법인세제 지원을 해준다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그럼 대기업이 이중으로 이익을 보고 대기업 노동자만 손해를 보니까.
조국 대표가 제안하는 사회연대임금제는 억대 연봉을 받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가 임금을 줄이는 희생을 한 것에 대해 정부가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에게 소득세를 줄여주는 세제 지원을 해준다는 것 같다.
조국 대표는 설마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는 무조건 희생하고 자신의 월급을 떼어내서 중소기업 노동자를 도와주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대기업 노동자의 임금을 국가가 세제지원으로 보전해 준다고 해도 하청회사 중소기업의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가 임금을 많이 받아 가는 방법이 마땅치 않다.
그렇다면 결국에는 국가가 개입해서 중소기업에게 세제 혜택을 주고 또 혜택을 받은 중소기업은 혜택을 본 것만큼 정규직 비정규직 직원에게 임금을 의무적으로 높여 줘야 하는데... 과연 이런 시스템이 가능할까?
위에서 소개한 스웨덴의 사회연대임금제는 국가가 노동자 측과 사용자 측을 중간에서 주선해서 신뢰관계를 만드는 역할을 할 뿐이고 그 외에 개입은 하지 않는다.
노동자 측(노동자 측에서도 대기업 노동자의 희생을 통해 대기업 노동자와 중소기업 노동자의 자발적 합의)과 사용자 측의 자발적인 합의로 연대임금을 이끌어낸다. 즉 당사자끼리의 자발적인 희생과 분배, 자발적인 합의로 사회연대임금을 만든다.
국가가 세제 지원이나 기타 지원을 해준다면 이는 사회연대임금제를 하지 않는 노동자나 기업에 대한 차별이 된다.
그래서 조국 대표가 말하는 사회연대임금제는 '한국형'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서 '한국형 사회연대임금제'라고 하든가 아니면 '공산주의 연대임금제'라고 불러야 타당하다. 망상에 불과하다.
평판경제신문 발행인 겸 기자. 레마코리아 대표이사. 문화정책학·과학기술정책학 박사 과정 재학 중,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경제사상을 연구하면서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를 통합하는 포스트자유주의 이론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평판경제신문
이승훈
jake.seunghoon@gmail.com
이승훈의 기사 더보기
저작권자 ⓒ 평판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