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이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2006)' 속의 괴물 조형물을 철거하겠다고 한다. 도시 미관을 해치는 공공미술 조형물이라는 이유다.
그런데 '공공'미술이라고 해도 미술인 이상 관점과 해석의 다양성이 보장되고 존중되어야 하므로 공공미술 조형물이 주변 미관을 해치는지는 쉽사리 판단할 수 없다. 도시 미관을 해친다고 다수가 인정해도 소수가 인정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공미술 조형물을 보는 관점에 있어서 대상이 현재 보이는 그대로(투명한 즉각성)를 보는 사람이라면 괴물 조형물이 흉측하고 도시 미관을 해친다고 느낄 수 있다. 물론 보이는 그대로를 보는 관점에서도 그런 흉측한 조형물에서 '유령의 집'과 같은 조작된 스릴감을 떠올리며 즐길 수도 있다.
반면에 대상을 볼 때 대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을 담는 프레임을 보거나 프레임으로 조정된 공간 뒤의 그 무엇을 보는 사람이라면 영화 '괴물'이 상징하는 또는 연상되는 여러 가지를 비판적으로 볼 수도 있다.
이런 관점을 초매개적 관점이라고 하는데 이런 초매개적 관점에서는 주변 미관을 해친다고 단정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응? 미술작품이라면서 왜 영화에 나오는 그대로 모사하듯 여기 등장시켰지? 괴물이라는 작품의 뒤에는. 작품의 위에는 뭐가 있지?' 이런 의문, 초매개 관점의 예술적 흥미가 나오는 것이다.
영화 괴물이 만들어진 때는 2006년이다. 2006년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진보좌파들의 실망, 그리고 비판, 나아가 비토의 목소리가 한국 사회를 지배할 때였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농업 개방과 한미FTA 추진 등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을 강고하게 추진했었고 이에 대한 진보좌파 진영의 반대가 극심했다. 그 과정에서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에 반대하는 이경해 씨, 김주열 씨 등 여러 진보 운동가들의 목숨이 희생됐고 그 외에도 부안 사태와 대추리 사태, 이랜드 홈에버 대량 해고 사태 당시 강경 진압으로 수많은 노동자 농민과 시민들이 고초를 겪었다.
"87년 민주화 이래 모든 정부를 통틀어 가장 잔혹하게 노동자와 민중, 시민을 탄압한 정부가 노무현 정부이며 앞으로도 노무현 정부보다 더 잔혹하고 반민주적이고 반민중적인 정부는 나올 수 없을 것"이라는 말들이 민주·진보좌파 진영 사이에서 나왔었다. 물론 열린우리당계는 제외한 나머지 범민주·진보좌파 진영에서.
뿐만 아니라 노무현은 대북송금특검을 강행하여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근본부터 붕괴시켜 한반도를 위기에 빠뜨렸으며 그로 인해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분당과 함께 급기야 탄핵사태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그 외에도 노동법(비정규직법)개악, 이라크 전쟁범죄 파병, 김선일 씨 사건, "X파일의 본질은 도청"발언,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정권 재창출 의무 없다" 발언. 고건 저격 손학규 저격 발언 포함), "10원 한 장" 발언 등등으로 전통적인 지지층이 붕괴하여 말년에는 지지율이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어려움을 겪는 국민을 돕고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국가와 사회가 국민을, 민중을 저버린다는 절망감이 민주진보진영을 지배하고 있을 때, 이러한 시대 상황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바로 '괴물'이다.
봉준호 감독은 '괴물' 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자 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괴물과 힘겨운 싸움을 하는 가족이 있다. 그런데 괴물보다도 더 무서운 세상이어서 외롭고 서글픈 것이다. 솔직히 이 말을 하고 싶었다. "여러분들은 국가나 사회에 도움을 받아본 적 있었나요?" 며칠 전 이런 사건이 보도됐다. 젊은 엄마와 어린 딸이 은행 무인점포에 갇혔다. 땡볕 더위인 낮 시간이어서 그곳에 갇힌 모녀는 탈진하기에 이르렀다. 경찰과 119에 전화했지만 '은행 경비보안업체가 담당해야 할 일'이라고 서로 미루는 데다 보안업체마저 늦게 도착했다. 결국 두 사람을 구한 건 30분 후 소식을 듣고 달려온 가족이었다. 무인점포 문을 부수고 가족을 구한 것이다. 이 사건을 보면서 '괴물'과 똑같은 일이 아직도, 여전히,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에 씁쓸했다. 이 영화의 시추에이션과 똑같다는 게 참으로 웃기고 서글펐다."라고 말했다.
봉준호 감독이 말하는 이러한 부조리에 대한 허탈감과 분노가 괴물 조형물 뒤에 존재한다. 이러한 사상 내지 관념이 미적으로 아름다운가, 아름답지 못한가를 어떻게 쉽게 단정할 수 있을까?
그러나 괴물 조형물이 도시의 미관을 해치는가 그렇지 않은가? 즉 아름다운가 아름답지 못한가를 쉽사리 단정하지는 못할지라도 분명한 것은 영화 '괴물'은 시민들에게 잊혀 가고 있으며 유지 보수가 되지 않아 방치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괴물 조형물이 설치되던 당시부터 공공미술 조형물이 가지고 있어야 할 스토리텔링 작업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다는 점 역시 부정할 수 없다. 스토리텔링을 그저 1000만 관객을 모은 영화의 흥행과 일시적 관심에 의존하기만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일시적 관심은 사라지기 마련이며, 스토리텔링이 되어있지 않으면 공공미술 작품은 시민 관객들과 동떨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유지 보수되지 않는 공공미술 조형물, 스토리텔링이 되어있지 않아 맥락을 잃어버린 공공미술 조형물은 공공미술 조형물로서의 존재 기반을 잃어버린다. 특히나 현대 미술에서 스토리텔링은 매우 중요하다. 설명할 수 없는 작품은 작품이 아닌 것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즉 애초에 괴물 조형물 자체가 도시 미관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유지 보수가 되어있지 않아서 도시 미관을 해치는 것이며 스토리텔링이 되어있지 않아 도시 미관을 해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유지보수 되지 않고 스토리텔링이 방기되는 공공미술 조형물이라면 에펠탑인들 흉측해지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괴물 조형물을 철거하는 행위에는 '자기 충족적' 비평에 따른 부조리가 존재한다.
이 부조리는 어디에서 연유했을까? '괴물'이라는 영화가 민주진보좌파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라서 보수우파라는 국민의힘 소속 오세훈 시장이 정치적 당성에 따라 유지 보수할 의지를 보이지 않고 스토리텔링하려는 노력을 아예 하지 않으니 그로부터 도시미관을 해칠 정도로 흉측하게 된 것은 아닐까?
적어도 오세훈 시장이 이를 철거하는 것은 그다지 아름답지 못한 행정이다. 오세훈 시장이 유지 보수를 하고 스토리텔링을 하면 되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공공' 미술도 미술이다. 조형 미술 작품으로서 관점과 해석의 다양성은 보장되고 존중되어야 한다. 설치 당시에도 흉측하다는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설치 당시엔 '그럴듯하다'라는 의견이 많았다.
필자도 아이들과 함게 '괴물' 앞에서 재미있는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 기억을 소환하는 현장의 작품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허전하다. 공공미술 작품은 쉽사리 설치해서도 안되고 쉽사리 폐기해서도 안된다.
평판경제신문 발행인 겸 기자. 레마코리아 대표이사. 문화정책학·과학기술정책학 박사 과정 재학 중,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경제사상을 연구하면서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를 통합하는 포스트자유주의 이론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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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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