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진영 일각에서 반도체 산업에 국가적 지원을 반대하고 있다. 경향신문(김유찬 포용재정포럼 회장)과 오마이뉴스(이봉렬 시민기자) 등은 올해 초에 이어 최근 며칠 전에도 다시 반도체 산업에 국가 지원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아마도 한국 반도체 산업을 대표하는 삼성전자가 재벌이라는 이유로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것이 아니면 반도체 산업에 국가 지원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참조 : 반도체 산업에 지원을 하면 안 된다는 경향신문 김유찬 회장의 칼럼
참고로 필자는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즉 삼성전자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가 매우 중대하다고 보고 있다.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는 고객사와의 경쟁구조, 경쟁사와 경쟁을 해야 하는데 삼성전자는 엉뚱하게도 고객사와 경쟁을 한다. 이 때문에 파운드리 부문에서 좀처럼 성장할 수 없다.
둘째는 GAA 게이트 기술의 낮은 수율.
셋째는 투자 규모에서의 경쟁력 (인텔 등의 시장 경쟁 참여)
이 때문에 삼성전자가 승승장구하며 '10만 전자'를 향해갈 때 경제전문가들과 투자전문가들의 장밋빛 전망이 쏟아져 나오던 때에 필자는 오히려 삼성전자를 팔고 정리할 시점이라고 역설했다.
주식 투자를 할 때는 기반영과 미반영을 주의해야 하는데 기반영 요소와 미반영 요소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도 어렵고 그 요소들이 실제로 주가에 반영되었는지 미반영되었는지를 아는 것도 어렵다. 순전히 직관과 감에 의존해야 한다.
필자는 당시에 삼성전자 주식 전망에 이러한 너무나 중대한 부정적 요인들을 전문가들이 미반영했기 때문에, 그리고 장차 고금리 강달러 시대가 도래한다는 중대한 거시경제 요인들을 전문가들이 미반영했기 때문에 -당시 파월 미 연준 의장은 인플레 위기를 부정하며 금리인상은 2025년 이후에나 생각해 볼 수 있다고 했지만 파월의 전망과 다르게 곧바로 인플레 위기가 닥치며 미국 발 글로벌 고금리 시대가 열렸다- 필자는 전문가들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앞으로 9만 전자 이후로 계속 주가가 추락한다고 주장했다.
지금은 다시 인공지능 특수에 힘입어 삼성전자에 기회가 오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부정적인 요인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다.
고객사와의 경쟁 구조와 수율 문제는 삼성전자가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므로 지금 쟁점과 관련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일단 그 문제는 차치하고 지금은 국가 지원, 반도체 산업에서의 투자 규모 문제를 간단하게 보자.
경향신문 칼럼니스트 김유찬 회장은 반도체 분야가 글로벌 공급 과잉이 필연적이므로 반도체 분야에 더 많은 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세액공제 등 세제 혜택을 제공한다는 것이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산업정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주장한다.
일견 맞는 말인데 반도체 산업 분야는 다르게 볼 측면도 있다. 김유찬 씨와 다르게 보면, 즉 김유찬 씨처럼 기업단위에서 좁게 보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시장 단위에서 넓게 보고 미래 세계 패권 문제로 보면 결론이 달라진다.
우선, 반도체 산업은 투자한 만큼 이익을 가져가는 산업이다.
투자를 하지 않으면 바로 도태된다. 반도체 산업은 '돈 놓고 돈 먹기 게임'판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투자 경쟁에서 자금을 조달할 능력이 없으면 애초에 시작하면 안 되는 산업이고, 시작했으면 접어야 하는 산업이다.
즉 속된 말로 말하면 '쫄리면 뒈지시던지' 산업이 바로 반도체 산업이다.
그래서 "반도체 분야는 (살아남으려다 보니) 글로벌 공급과잉이 필연적이므로 (공급과잉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분야에 더 많은 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세액공제 등 세제 혜택을 제공한다는 것이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산업정책이 될 수도 있다" 이런 논리도 옳다.
반도체 산업은 투자 규모에 따라 성적이 달라지고 승자독식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공급 과잉이 되더라도 계속 투자하지 않으면 그동안 쌓아온 것들을 다 날리게 된다.
그래서 서로 투자를 늘리고 하다 보면 글로벌 공급 과잉이 생기는 것인데 이 무지막지한 경쟁에서 못 버티는 회사, 국가는 '쫄딱' 망하게 된다.
다음으로, 반도체 산업은 미래 세계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핵심 산업인 인공지능 산업의 배후 산업이다.
이에 따라서 미래 세계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미국과 중국의 (인공지능 및 반도체) 산업 투자 경쟁이 치열하다. 미중 무역전쟁, 대중디커플링 디리스킹 정책이라는 것도 사실은 인공지능과 반도체 패권 경쟁으로 나온 전쟁이다. -대중 디커플링 정책은 지난해에 폐기되기는 했지만 디리스킹 정책은 그대로다.-
여기에 일본과 유럽(독일)이 가세했다. 일본이 국가 차원에서 반도체 산업을 위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김유찬 회장의 논리에 따르면 이 상황을 설명하지 못한다.
일본 정부가 국가적 차원에서 반도체 산업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는 이유는 단순히 과거 반도체 강국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것이 아니라 미래 세계 패권 경쟁에 동참하기 위해서다.
일본 정부의 반도체 산업 지원 정책은 투 트랙이다. 하나는 TSMC 공장을 일본 국내에 유치하는 트랙, 또 하나는 일본 자체 반도체 기업인 라피더스를 육성하는 계획. TSMC 공장 유치 정책은 그럴듯한 정책이지만 개인적으로 라피더스 육성 계획은 회의적으로 보고 있다.
라피더스에 회의적인 전망을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필자가 보는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투자 규모다. 투자 규모가 너무 작다. 일본 정부는 장기적으로 30조 원 정도를 투자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제 확정된 것은 매년 2~3조 원 규모이고 30조 원은커녕 매년 2~3조 원도 그대로 다 집행될지는 의문이다.
TSMC의 '한 해' 연구개발비만 7~8조 원이고 매년 20~30%씩 늘어난다. 이런 상황에서 라피더스가 경쟁이 될까?
삼성전자의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르는 인텔이 미국과 유럽에 수백조 원을 투자한다. 인텔의 투자처 중 한 곳인 독일에는 40조 원을 투자하고 여기에 독일 정부가 100억 유로(14.5조 원)를 지원한다.
반도체 산업은 글로벌 공급 과잉이 될 것이므로 정부가 세제 지원 등을 해줄 필요가 없다는 김유찬 회장의 주장을 다른 측면에서 볼 이유다.
결론적으로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반도체 산업 투자에 힘쓰기는 하지만 그래도 규모가 TSMC와 인텔에 비해 적기 때문에 전망이 어둡다.
여기에다 김유찬 회장 등 진보진영에서는 평소에 절대악 취급하던 신자유주의 논리를 어설프게 끌고 와서 국가적으로 지원해 주면 안 된다는 주장을 한다. -한국에서 신자유주의만큼 오해가 많은 이슈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국가의 시장과 기업에 지원, 개입을 원칙적으로 반대하지만 원칙이라는 것은 항상 예외가 있다. 신자유주의라고 해도 예외적으로 특정 전략 산업과 교육과 복지에는 '빅 푸시'해서 막대한 재정을 투입한다.
미국 중국 일본 유럽에서는 다들 국가적으로 빅 푸시 해준다. 한국도 반도체 산업에 국가의 세제 지원 등 적극적 지원, 빅 푸시가 필요하다.
한국이 현재 세계 6위의 강대국인데 이러한 세계 패권 경쟁을 포기해야 하나? 삼성전자가 없는 한국을 상상해 보시라라는 말이 아니다. '삼성전자'라는 말 대신에 '반도체'를 넣어보시라는 말이다. 즉 반도체가 없는 한국을 상상해 보시라는 말이다.
시리아 난민 사태와 미중 무역전쟁 이후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퇴조하고 클럽과 장벽의 시대, 신보호주의의 흐름이 거세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퇴조하면 약소국에 불리하고 미국 같은 강대국에 유리하다. 전 세계적으로 불평등이 확산되기 때문에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퇴조는 바람직하지 않지만 당장은 어쩔 수 없다.
클럽과 장벽의 시대, 신보호주의 시대에 들어 반도체 산업에 국가 지원을 위해서 당장 시급한 것이 산업은행에 대한 규제 혁신이다. 현재 산업은행의 법정자본금 한도는 10년째 30조 원에 묶여 있고 이미 26조 원을 소진한 상태다. 클럽과 장벽의 시대에 부합하지 않는 규제다.
산업은행의 법정자본금 한도를 100조 원 이상으로 늘리고 미래 국가 패권 경쟁을 좌우하는 반도체와 인공지능 산업에 대대적인 보조금 지원 정책을 써야 한다.
평판경제신문 발행인 겸 기자. 레마코리아 대표이사. 문화정책학·과학기술정책학 박사 과정 재학 중,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경제사상을 연구하면서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를 통합하는 포스트자유주의 이론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평판경제신문
이승훈
jake.seungho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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