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본격적인 장마철이 시작되면 과일 가격이 또 오를 전망인데요, 얼마 전에 유명 인플루언서이자 공무원인 '충주맨'이 너무 비싼 과일값에 분노했다는 소식이 있었죠.
국내에서 1개당 평균 3000원을 넘는 충주 사과가 미국에선 1000원대에 판매 중인 것이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충주맨' 김선태 주무관은 유튜브 채널 충TV에서 "수출용 충주사과 논란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국민 모두 속았습니다"라고 방송을 했습니다.
논란이 확산되자 충주시가 설명을 내놨습니다. "수출용 충주사과는 100% 계약재배에 따라 정상적인 유통돼 정해진 가격"이고 속인 것이 아니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속인 것은 아니라지만, 왜 이렇게 한국에서는 가격이 비쌀까요?
이에 대해서 "수출을 많이 하기 때문에 국내에서 사과가 부족하고 그 결과 사과값이 비싸다. 수출하지 말자"는데... 일부 농가 입장에서는 수출을 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수출한 만큼 수입을 많이 해서 가격을 충분히 떨어뜨리는 것이 옳은 정책입니다.
물론 수입을 늘리는 것에는 거의 대부분의 농가가 반대합니다. 어떤 농가는 찬성하고 어떤 농가는 반대하는데 거국적인 차원에서 어떤 정책이 바람직한지는 나중에 논의하기로 하고...
직관적으로 생각을 해보면, 한국이 수출만 하고 수입은 막으면 다른 나라들은 한국의 행태를 그냥 가만히 놔둘까요? 왜 세계 여러 나라들은 한국이 잘 살 수 있도록 일치단결해서 한국의 물건을 수입만 해야 할까요? 그럴 수는 없죠.
또 한편으론, 국내 농산물 가격은 계속 비싸지는데 국민들은 언제까지 일부 농가의 이익을 위해서 비싼 값으로 농산물을 구매해야 할까요? 농부들보다 도시 빈민이 훨씬 힘들게 삽니다.
아무튼 수출한 만큼 수입도 같이 늘려가서 수출입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국민경제에 가장 이로운 정책이고 국민의 후생을 최대화하는 정책입니다만 이에 대해서는 일부 집단과 포퓰리즘 정치인들이 극렬하게 반대하니 "나 혼자만 잘 사는 것은 자본주의가 지향하는 바가 아니다"라는 정도로만 정리하고 본론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한국의 소비자 물가 중에서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비싼 상품이 있습니다. 바로 과일을 비롯한 농축산물입니다. 대신에 대중교통 요금 등 공공서비스 가격은 싼 편이죠.
한국의 과일 값은 왜 이리 비싼지에 대해서 언론과 정치인들은 흔히들 "한국은 농산물 유통마진이 너무 많다"면서 "유통업자들의 농간"이라고들 합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실제 한국의 농산물 유통마진은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적습니다.
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한국의 농산물 유통마진(유통비용률)은 45% 선입니다. 농산물 가격이 싼 선진국들은 유통마진이 훨씬 높습니다. 미국은 농산물 유통마진이 평균 70%를 넘습니다. 대만은 60%, 일본은 55%입니다. 한국은 농산물 유통마진이 적은 편입니다.
그럼 도대체 어떤 연유로 한국의 과일, 농산물은 이렇게 비쌀까요?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가격이 급락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농산물은 왜 이리 비싸고 또 가격이 급등락할까요?
경제학적 설명은 간단합니다. 수요공급의 법칙 때문입니다.
농산물 가격이 비싸고 가격이 급등락하는 이유는 농산물 공급이 한정되어 있고 거래 물량이 작기 때문입니다. 농가 규모를 키우고지 않는한, 공급 탄력성을 늘리고 대량 선주문 판매가 되지 않는 한 가격 급등락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정치권과 포퓰리스트들은 샤일록이 살점 떼먹는 17세기 사고방식으로 금융을 죄악시하는 것처럼 유통을 죄악시하여 소비자 직거래를 하자, 유통 단계를 줄이자 하는데... 그게 사실 매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리해도 민생경제에 도움이 안 됩니다.
왜냐면, 농산물의 비싼 가격과 가격 급등락은 공급탄력성이 매우 낮은 품목에 거래 물량이 작아서 생기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소비자 직거래를 해봤자 공급탄력성이 바뀔까요? 소비자가 직접 농산물을 구매한다고 해서 공급탄력성이 바뀔 리는 만무합니다.
대량 선주문은 언감생심, 소비자 개인 개인이 무슨 수로 대량 주문을 합니까? 소비자 직거래를 하면 오히려 거래 물량이 줄어듭니다. 개개인 소비자야 뭐 한 번 구매할 때 사과 다섯 알, 1만 원어치 구매하겠죠. 미국 수입 유통상처럼 한 번에 수천수만 상자를 구매하는 '큰 손'이 거래를 해야 한 번의 주문 량이 늘어납니다.
대량 선주문을 받을 수 있을 만큼 농가도 거대 기업화 돼야 하는데 이것을 또 포퓰리즘 세력들은 반대합니다.
한편으론, 가격이 변동될 때 소비자와 공급자인 농산물은 이전의 가격으로 팔고 사고할까요? '팍타 준트 세르반다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를 떠올리며 불리해진 가격 그대로 매매를 할 당사자들이 얼마나 있을까요?
아무도 서로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소비자들은 약속을 취소할 때 아무런 불이익을 보지 않습니다. 게임 이론상 약속을 어기게 되어있습니다. 그런 소비자와 거래하는 농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농산물 거래 유통에서 소비자 직거래 활성화 정책은 이율배반적인 구조가 있어서 실현되기 어렵습니다.
정반대로 오히려 유통 경쟁을 강화하고 유통업자들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그냥 시장에 맡겨두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정책입니다. 그럼 유통에서 이익을 많이 보면 이익을 보려고 유통업자들이 모여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경쟁이 일어나면서 유통 가격이 적정 수준을 찾아갑니다.
공급탄력성 문제를 해결하고 규모의 경제를 이루는 방법은 수입을 늘리고 유통업에 대기업의 참여, 경쟁을 늘리면 됩니다. 그러면 경제의 규모가 커지고 또 '1회성 게임'이 '다회성(多回性) 게임'으로 바뀌고 약속 위반의 불익이 커집니다.
물론 이런 정책은 역시 포퓰리즘 세력들 때문에 받아들여지기 어렵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덧붙이자면, 한국 농산물의 경우 상품성의 기준이 너무 높습니다. 모양이 예쁜 극상품만 유통이 되고 충분히 먹을 수 있는 농산품들이 버려지게 되면서 가격을 올리는 측면도 있습니다.
해외에서는 '못난이 농산물' 시장이 큽니다. 이를 '푸드리퍼브(Food Refurb)'라고 하는데 푸드(Food)에 재공급품을 의미하는 '리퍼비시드(Refurbished)'의 글자 앞부분이 결합된 단어입니다.
못생겼지만 품질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는 농산물들을 거래하고 유통하는 경제입니다. 푸드리퍼브 상품은 일반 상품보다 가격이 30~50%정도 저렴합니다. 선진국에서는 이런 푸드리퍼브 상품 시장이 큽니다.
선진국에서는 한 10년 전부터 생겨난 트렌드입니다만 한국에는 이러한 푸드리퍼브 시장이 거의 없습니다. 국내에서 버려지는 못생긴 농산물이 한 해 5조원 규모입니다. 국내 농산물 시장 전체 규모가 30조원 내외이니 엄청나게 많은 농산물이 버려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축산,잠업 합쳐서 20조원, 농축산 전체 합쳐서 55조원 정도 됩니다.
수입 통제와 함께 이 푸드리퍼브 시장이 발달하지 못한 것이 한국 농산물 가격이 비싼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최근에 푸드리퍼브 농산물을 '못난이 농산물'이라고 부르면서 푸드리퍼브 시장을 육성하려고는 하지만 아직 소비자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아서 시장이 잘 형성되고 있지 않습니다. '잘난이 농산물'도 모자라서 '잘난이 농산물'에 온갖 포장을 화려하게 해야 소비자의 선택을 받습니다.
이것도 한국에서 성행하고 있는 일종의 루키즘(외모주의)의 폐해가 아닐까 싶습니다.
평판경제신문 발행인 겸 기자. 레마코리아 대표이사. 문화정책학·과학기술정책학 박사 과정 재학 중,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경제사상을 연구하면서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를 통합하는 포스트자유주의 이론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평판경제신문
이승훈
jake.seungho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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