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직 해병 채 상병 사건에서 해당 사건을 조사하던 해병대 전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의 행위가 수사권이 없이 수사를 진행한 항명이라는 주장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격노 및 대통령실 수사 외압 여부와 더불어 채상병 사건의 2대 쟁점이다.
제1 쟁점인 윤석열 대통령의 격노 및 수사 외압 여부는 사실 관계를 확인해 봐야 하고 여기서는 논할 수 있는 계제가 아니니 일단 제쳐놓기로 하자.
다만 제2 쟁점인 박정훈 대령의 행위가 수사권이 없는데 수사를 진행한 항명인지는 군사법원법의 해석 문제이고 누구나 알아보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 논해보기로 한다.
그제 (2일)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국회 대정부질문에 출석,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이 제1 쟁점인 채 상병 외압 사건에 대해 "어떻게 규정하냐"고 질의하자 "외압이라고 하는 것은 박정훈 대령의 일방적인 주장"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제2 쟁점에 대해 박범계 의원이 "대통령 비서실장이 이 사건의 본질은 항명이라 얘기했는데 동의하냐"고 묻자 신원식 장관은 "동의한다"고 답했다.
앞서 박정훈 대령은 순직 해병 사건의 조사 결과를 민간으로 이첩하는 과정에서 항명 혐의로 보직해임됐다. 이후 박정훈 대령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했던 발언 중 일부가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 대한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며 '상관명예훼손 혐의'까지 받고 있다.
한편 어제(3일)는 민주당 등 야당이 주도하는 채상병 특검법 상정에 국민의힘이 반발하고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에 나서는 과정에서 상식에 반하는 주장들이 나오곤 했다.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일주일 만에 수사 결론을 내렸다"며 “왜 이렇게 급하게 적은 인력으로 빨리 결론내려고 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주진우 의원의 발언을 볼 때 주진우 의원을 비롯한 국민의힘 의원들이 이번 사건의 배경과 맥락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특검법 사건에 연루되는 것을 막는 것에만 신경을 쓰는 것이 아닐까 의심이 들기도 한다.
박정훈 수사단장의 수사권 등을 규율하는 군사법원법이 최근에 개정됐다. 지난 2022년 7월 이예람 중사 사건을 계기로 군인의 사망(변사) 사건에서는 군사법원의 재판권을 아예 없애버리고 일반법원으로 넘긴 것이다.
이예람 중사 사건은 여군인 이예람 중사가 부대 내에서 여러 남성 상관들로부터 성추행 등 성폭행을 당하자 수사를 의뢰했는데 군 내부에서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자 이예람 중사가 자해사망한 사건이다.
이예람 중사 사건을 계기로 군인의 사망(변사) 사건에 군에서 관할하는 재판과 수사가 공정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보아 그런 경우 군사법원의 재판권을 아예 없애버리고 민간법원으로 이전 시킨 것이 2022년 7월 군사법원법 개정의 핵심 내용이다.
즉 군인이 사망한 사건은 군사법원에서 재판을 하지 않으니 수사가 그에 따라 제한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군 수사대는 사건 기록 서류를 곧바로, 즉시 경찰에 이첩하게 된다. 길게 수사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수사단장인 박정훈 대령이 일주일 만에 수사결론을 내렸다며 비판하고 있다. 법이 바뀌어서 기초적인 수사만 하고 경찰에 즉시 이첩을 해야 하니 당연한 일인데 이를 트집 잡고 있다. 사건의 배경, 맥락, 법률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그나마 주진우 의원은 박정훈 대령이 수사권이 있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했다. 그런데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는 박정훈 대령에게 수사권이 없는데 (수사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수사를 했고 그래서 항명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군은 재판권이 없는 것이지 수사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건을 인지하고 혐의 사실을 수사해서 기초적인 기록을 한 다음 경찰에게 그 기록을 넘긴다. 피의사건을 조사하는 것도 수사다. 그 한도에서 군은 수사권이 있다.
신원식 장관과 정부여당의 논리라면 군 수사대는 피의사실을 아무렇게나 정의하고 범죄 피의자를 아무나 지정해도 상관없다는 결과로 이어진다.
군인의 사망(변사) 사건을 그냥 아무 수사 없이 이첩하는 것이 아니다. 사망 사건 관련 서류를 작성해서 같이 넘겨야 하는데 이 서류가 바로 '인지통보서'다.
(민간)법원에 재판권을 넘기기 위해 군 수사대가 작성해서 전달하는 '인지통보서' 이때 수사책임자는 기초적인 수사를 통해 죄명과 범죄사실을 특정해서 기록해야만 한다. 박정훈 대령도 이에 따라 제한적인 수사를 한 것이고 법률 규정에 따라 이첩 절차를 수행했다고 증언하지만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는 이를 부정하고 군인 사망사건에는 군에 수사권 자체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붉은 선으로 표시한 부분을 보아 알 수 있다시피 군 수사대(박정훈 대령)는 죄명과 범죄사실을 특정해서 기록하고 이를 경찰에 이첩해야 한다. 즉, 기본적인 수사는 하도록 되어 있다. 기본적인 수사 없이 피의자의 죄명과 범죄사실을 기록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 여당은 군인 사망사건에는 군 수사대의 수사권 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거짓 주장을 하고 있다.
이렇게 채상병 사망사건의 2대 쟁점에 정부 여당의 태도는 무리한 주장과 석연치 않은 의혹이 존재하니 당연히 특검법에서 의혹을 해소하지 않을 수 없다.
군사법원법에 따르면, 군사법원에 재판관할권이 없는 사건은 군사법경찰관이 지체 없이 경찰에 사건을 이첩해야 한다.
그간의 사건의 정황을 다시 정리하면 채상병 사건은 이첩에 대해 국방부장관의 결재까지 있었음에도 이첩 보류가 이루어졌다, 이첩된 사건기록을 다시 국방부 검찰단이 회수하여 국방부 조사본부의 재조사를 거치고 혐의자가 축소된 채 경찰에 재이첩됐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실과 이종섭 전국방부장관 등 관련자들의 수상한 전화통화와 의사연락이 집중적으로 일어난 사실이 확인됐다. 대화 내용은 알 수 없지만 대통령실의 외압이 있었다는 정황(정황은 정황증거가 되지는 않지만 정황이 쌓이면 정황증거도 될 수 있다)이 많으니 대통령실을 통할하는 대통령도 개입되었다는 의혹이 당연히 제기된다. 즉 국정농단이고 이번 채상병 사건의 제1 쟁점이다.
국정농단을 당연히 의심할 수 있는 사건이니 여야를 가리지 않고 의혹을 규명하는 데에 힘쓰는 것이 국회의원들의 당연한 의무다. 정부 여당은 '대통령이 어느 나라의 대통령인지 국민의힘이 어느 나라의 정당인지' 다시 한번 되돌아보길 바란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공수처의 수사를 기다리자고 하지만 공수처는 공수처장을 대통령이 임명하고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수사가 좌지우지될 수 있기 때문에 대통령이 개입되었다는 의혹이 있는 사건을 두고 공수처가 아무리 수사를 해도 대통령의 개입, 국정농단을 인정하는 수사결과를 내지 않는 한 공수처의 수사를 믿기 어렵다.
국민의힘 쪽에서는 "공수처를 민주당이 우겨서 만든 것인데 그 공수처를 못믿겠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주장하지만 그야 당시 민주당이 자신이 계속 집권한다고 믿었거나, 꼼수를 부렸거나, 아니면 뭘 몰라서 공수처를 '옥상옥'식으로 만든 것일 뿐이다.
민주당이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고, 현재 공수처가 대통령의 개입을 포함해 정부여당의 비리 의혹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둘은 별개의 문제다.
특검법만이 해결책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평판경제신문 발행인 겸 기자. 레마코리아 대표이사. 문화정책학·과학기술정책학 박사 과정 재학 중,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경제사상을 연구하면서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를 통합하는 포스트자유주의 이론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평판경제신문
이승훈
jake.seunghoon@gmail.com
이승훈의 기사 더보기
저작권자 ⓒ 평판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