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죄의 진화...가해자들의 논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

어깨만 만져도 성추행 판결, 성감대 성추행 판결
202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유형력 성추행 판결

이승훈 승인 2024.07.09 21:18 의견 0



사진=픽사베이 무료이미지


성추행(강제추행)사건이 끊이지 않는다. 최근에는 전직 은행장이 성추행을 하여 유죄가 선고되기도 했다. 은행장이라면 사회의 지도층이라 할만한 사람이다. 사회의 지도층이 성추행이라니 놀라운 사건이지만, 성추행 사건이 워낙에 자주 발생하다보니 한편으론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무고를 제외하고, 일반적인 성추행 사건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자신의 행위가 성추행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성추행인지 아닌지는 본인이 판단하지 않는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판단한다.

다만 피해자의 입장에서 판단하더라도 피해자가 비정상적으로 수치심이 많다든가 하여 일반적이지 않은 경우는 제외된다. 즉 피해자의 입장에서 판단한다고 할 때 통상적인 수치심을 가진 일반적인, 객관화된 피해자의 입장에서 해당 상황에 처했을 때 그 '객관화된' 피해자가 수치심과 성적자기결정권 침해를 느꼈느냐를 보고 판단한다.

성추행 사건의 경우 이렇게 '객관화된' 피해자의 입장에서 판단한다는 점 외에도 강제라는 요건, 추행이라는 요건을 판단함에 있어서도 주의해야 한다. 대중들이 생각하는 것과 개념이 다르기 때문이다.

20년 전만 해도 한국 사회에서 성추행(강제추행)에 대한 인식은 법조인조차도 일반 대중과 큰 차이가 없었다. 그만큼 성추행의 개념의 변화가 많았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2004년, 우리 대법원에서는 성추행 사건에서 획기적인 판례를 냈다. "어깨만 만져도 강제추행이 될 수 있다"는 판결이었다.

그 이전까지는 성적으로 민감한 부분을 직접 만져야 추행이 인정되었다. 즉, 가슴이나 성기 등 성적으로 민감한 부위를 직접 만지는 수준 이상의 매우 노골적인 행위라야 강제추행이 될 수 있었다.

2004년 당시 사법시험 준비생의 필독서로 선택되는 이재상 교수의 최신의 형법 교과서 중의 한 대목을 그대로 발췌해 보면 "손이나 무릎, 여자의 옷 위로 가슴을 만지는 것만으로는 추행에 해당하지 않는다"라고 서술돼 있다.

여성의 맨 가슴의 피부에 접촉돼야 추행이 될 수 있고 맨 가슴이 아닌 옷 위로 가슴을 만지면 추행이 될 수 없다는 것이 학계의 다수설이었고 판례의 태도였다.

당시 통설적인 성추행의 법리가 그 정도였으니 '어깨만 만져도 성추행이 될 수 있다'는 판결은 참으로 획기적인 판결임을 알 수 있다.

2004년 대법원에서 "어깨만 만져도 성추행"이라는 판결이 나왔을 때 인터넷 포털에서는 난리가 났었다. 그 사건을 보도한 기사에 달린 포털사 네티즌 의견 가운데 최다 추천을 받은 글 하나를 그대로 긁어 복사해서 옮겨보면 이러하다.

"무슨 신체적 접촉이든 상대방에게 수치심을 느끼게 하면 성추행이다! 어깨뿐 아니라 손을 잡아도.. 머리를 쓰다듬어도, 어떠한 경우라도 스킨쉽은 하지 말라! 그것만이 성범죄에서 해방될 수 있는 비법이다! 본인의 선의를 가지고 어깨를 주무르든 도와주려고 손을 잡든 아무 의미가 없다. 상대가 기분이 나쁘면 성범죄로 파렴치범으로 몰리는 것이 현실이다! 절대 이런 어처구니없는 법의 판결에 동의할 수 없다! 이런 식으로 피해자라며 합의금을 요구하면 얼마든지 부자도 될 수 있지 않겠는가? "

당시 많은 네티즌들은 "어깨뿐 아니라 손을 잡아도, 머리를 쓰다듬어도 추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네티즌들의 흥분과 분노가 일면 이해되는 것이, 그전까지는 우리 법원도 그러한 행위는 강제추행이 될 수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년 가까이 흐른 지금은 아마 많은 사람들이 2004년의 그 판결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 어깨를 잡아도 손을 잡아도 머리를 쓰다듬어도 성추행이 될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될 수 있다'는 표현은 최종적인 판단은 유보하고 강제 추행의 다른 여러 가지 구성요건 요소가 모두 충족되는지까지 다 살펴보고 그 모든 요건들이 충족되어야 비로소 강제추행이 된다는 뜻을 갖고 있다.-

법은 계속 발전한다. 2004년 '어깨만 만져도 성추행'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우리나라 법질서는 성범죄와 관련해서 '성기중심주의'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어깨만 만져도 성추행' 판결의 의미는 우리 법질서가 성범죄에서 '성기중심주의'관점을 확실히 폐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기중심주의'를 대신한 것은 '성적자기결정권'이다. '성기중심주의'를 '성적자기결정권 중심주의'가 대신하게되면서 '성적자기결정권 중심주의'와 양립할 수 없는 '정조중심주의'도 확실히 폐기됐다.

-정조중심주의가 한국 헌법 조문상에서 폐기된 것은 1980년이고 한국 형법 조문상에서 폐기된 것은 1995년이다. 이렇게 성적자기결정권이 전면에 대두한다는 것은 그 뒤로 성범죄나 성풍속 관련, 가족 관련 법제도상에서 많은 변화가 생김을 예언할 수 있도록 해준다. 예를 들어 간통죄 폐지, 기타 많은 가부장적 법제도의 폐기 등등. -

'어깨만 만져도 성추행 인정' 판결로 '성적자기결정권 중심주의'가 확고해졌지만 2012년에는 "성감대가 아니면 (그 곳을)만져도 성추행 아니다"라는 언뜻 보면 이해되지 않는 반동적인 판결이 나와서 큰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그 판결은 기자가 법논리를 잘 몰라서, 혹은 조회수를 올리려고 제목을 선정적으로 만든 것이다.

당시 법원이 무죄를 내린 이유는 성추행이 인정되기 위해서 필요한 구성요건 중 '강제'와 '추행'이라는 부분을 판단할 때 '강제'가 없었다고 보아서 무죄를 내렸던 것뿐이었다.

이 '강제'라는 구성요건의 해석에서도 최근에는 기준이 달라졌다.

2012년 당시는 '강제'라는 것은 폭행이나 협박으로 상대방의 반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 이상일 때라야 '강제'가 인정된다고 보았다. 학설과 판례는 강제추행죄에서의 '강제'는 강간죄와 같은 수준의 폭행 협박을 행사할 것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 다수설이었다.

2012년 당시의 성감대 성추행 사건에서는 가해자가 피해자의 등을 두 번 툭툭 쳤고 쇄골과 가슴을 손으로 찔렀다는 혐의를 받고 있었다. CCTV를 확인해 보니 쇄골과 가슴을 손으로 찌른 사실은 없었고 피해자의 등을 두 번 툭툭 친 것만이 확인됐다. 이때 피해자의 등을 두 번 툭툭 친 행위를 해석할 때 법원은 '강제'가 없었다고 보아서 무죄를 내렸다.

그런데 법리를 모르는 기자들이 '등은 성감대가 아니고 쇄골과 가슴은 성감대'라고 생각하면서 '성감대가 아니니 성추행이 아니라고 판결했다'는 식으로 기사를 쓴 것이다.

이 성감대 성추행 사건을 지금 2024년에 다시 법원이 판단한다면 무죄가 나올지는 확신할 수 없다. 그 사이에 '강제'를 인정하는 기준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대법원 2023. 9. 21. 선고 2018도13877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르면 기존의 강제 개념보다 훨씬 완화된 강제 개념을 인정하고 다음과 같이 판결했다.

「 종래의 판례 법리는 강제추행죄의 범죄구성요건이나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보호법익과 부합하지 아니한다.

강제추행죄의 범죄구성요건과 보호법익, 종래의 판례 법리의 문제점, 성폭력범죄에 대한 사회적 인식, 판례 법리와 재판 실무의 변화에 따라 해석 기준을 명확히 할 필요성 등에 비추어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의 의미는 다시 정의될 필요가 있다.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은 상대방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로 강력할 것이 요구되지 아니하고, 상대방의 신체에 대하여 불법한 유형력을 행사(폭행)하거나 일반적으로 보아 상대방으로 하여금 공포심을 일으킬 수 있는 정도의 해악을 고지(협박)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어떠한 행위가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행위의 목적과 의도, 구체적인 행위태양과 내용, 행위의 경위와 행위 당시의 정황, 행위자와 상대방과의 관계, 그 행위가 상대방에게 주는 고통의 유무와 정도 등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즉 불법한 유형력을 행사하는 것만으로 '강제'가 인정된다.*

*위력에 의한 성추행의 경우는 강제가 인정되지 않아도 위력에 의한 성추행죄가 성립할 수 있음을 주의.

이러한 기준에 따라 성추행 사건의 유무죄를 판결하게 된다.

본인이 칭찬의 의미로 했건, 그냥 허리를 한 번 만졌건 그것은 본인 생각일 뿐이고 생각은 자유(?)다. 그러나 책임은 본인이 정하지 않고 법이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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