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그다지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지만 해외에서는 높은 관심을 가지는 사건이 바로 삼성전자의 총파업입니다. 삼성전자의 총파업은 정책학에서 말하는 '국가 난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11일) 새벽, 박노자 (Vladimir Tikhonov) 오슬로 대학교 교수는 호주 ABC뉴스에 인터뷰이로 출연해서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삼성전자 총파업에 관해 논평을 했습니다.
박노자 교수는 삼성전자 총파업에 대해 "역사적 분수령"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박노자 교수는 "노동에 대한 배제를 그 기본 조건으로 하는 극단적인 신자유주의 체제 속에서 최근 10여 년간 노조 조직률이 9%에서 14%로 오르고, 삼성에서 노조가 생겨 맹활약을 하고, 이제 드디어 한국의 주요 수출 상품 (반도체) 생산라인에 차질이 생길 만큼 노조의 힘이 강해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박노자 교수는 "파업에 승산이 상당히 있다고 기대한다"며 "정말 역사적인 대사건"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일단, 신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필자로서는 박노자 교수의 논평에 대해 유감이 많습니다. 신자유주의는 경제적 약자와 소수자를 최우선으로 돌보고 평등을 추구하는 정치경제사상이기 때문입니다. 신자유주의에 대해서는 한국 지식인 사회에서 너무나 오해가 많아서 나중에 다시 한번 정리하기로 하고...
현재 삼성전자 총파업에 대해서는 전반적인 여론이 좋지 않습니다. 박노자 교수를 지지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억대 연봉을 받는 삼성전자 노동자와 연봉, 월급 200~300만 원을 받는 보통 노동자들의 거리감이 너무 크고 결국 보통 노동자들이 피해를 본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나옵니다.
특히 언론에서는 한국의 국민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반도체 산업을 주도하는 삼성전자가 최근 기술 경쟁과 투자 경쟁에서 뒤처지면서 위기에 처해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삼성전자 총파업을 매우 부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총파업을 자제해야 한다는 논조를 보이는 언론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총파업을 막을 법적인 근거가 없습니다.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국가 난제입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삼성전자 총파업 소식이 중요도에 비해서는 언론 노출이 적다는 느낌도 듭니다만 삼성전자의 총파업은 올해 초부터 계속 다뤄져 왔고, 다만 대통령이 탄핵으로 내려오냐 마냐 하는 정치적으로 너무 큰 이슈가 있어서 상대적으로 가볍게 취급된 것 같기도 합니다. 국외에서야 반도체 공급망에 큰 영향을 미치니까 당연히 중요하게 다루는 것일 테고요.
박노자 교수는 신자유주의를 반노동적 정치경제 사상이라고 하는데, 1990년대 금융위기 이후 세계 각국이 겪은 노동시장 정책 시행착오를 OECD가 정리한 '구조개혁의 진전'이라는 책을 읽어본다면 생각을 바꿀지도 모르겠습니다.
세계 각국의 노동 정책 사례를 취합한 결과, 신자유주의와 해고의 자유가 오히려 친노동적이고 노동자에게 더 유리하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규명한 책이 OECD의 '구조개혁의 진전'이라는 책입니다. 이 책에 대해서는 나중에 기회가 될 때 다시 한번 설명하기로 하고.
한국은 사실 신자유주의 체제와 거리가 멉니다. 신자유주의의 전형적인 표지는 작은 정부(효율적인 공공부문), 구조조정(노동유연성, 노동이동 자유) 세계화(자본유연성, 자본이동 자유) 등 세 가지입니다.
이 중 한국의 체제가 신자유주의에 부합한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세계화에 한해서입니다. 그런데 20세기 후반 들어 WTO체제, 그리고 FTA체제가 확산되면서 세계화는 사민주의 국가들도 다 받아들였기 때문에 이를 신자유주의의 표지라고 말하기는 곤란합니다. 다만 신자유주의에서 유래했다는 정도입니다.
오히려 최근에는 미국과 유럽 일부 국가가 보호주의로 회귀하면서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퇴색되고 있는 중입니다. 보호주의가 심화되어 신자유주의가 퇴색하면서 자본과 노동, 일자리들이 미국으로만 집중되고 강달러에 화폐 인플레로 세계 각국에게 민폐를 끼칩니다.
이렇게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후퇴하면서 당연히 한국처럼 세계화 자유무역을 성장동력으로 삼는 나라들과 약소국들이 피해를 봅니다.
그러나 나머지 세계화의 표지, 작은 정부 효율적인 공공부문, 구조조정 친화적인 노동시장과 해고 자유 등에 관해서는 한국은 완전히 신자유주의와 정반대인 나라입니다.
특히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의 국가경쟁력을 갉아먹는 주요 항목이 구조조정에 적대적이고 해고를 제한하고 노동유연성이 부족한 노동시장 항목입니다. 선진국은 사민주의 국가 신자유주의 국가 불문하고 노동시장이 매우 유연하고 해고가 매우 자유롭습니다.
한국이 노조에 적대적인 나라인 것은 맞는 말입니다. 삼성전자가 노조 적대적인 것도 비판받아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한국의 상황에서는 무조건 노조를 편들 수도 없습니다.
왜냐면 한국은 선진국에 비해서 사용자 대항권이 대단히 취약하고 정규직에 대한 해고 자유가 사실상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노동조합이 왜곡돼 있습니다.
노동3권, 파업권은 더욱더 강화돼야 하고 노조 가입도 더 확대돼야 합니다. 다만 정규직 대공장 노조 이기주의 때문에 중소기업 노동자들, 월 200~300만 원 겨우 버는 하청노동자 등등이 피해를 보기 때문에 산별노조를 강화해가면서 노조를 확대해야 합니다. 한국은 산별노조가 너무 약합니다.
산별을 강화하고 동시에 사용자(기업)의 대항권 특히 해고 자유를 강력하게 광범위하게 보장해 줘야 합니다. 그것이 사민주의 신자유주의 불문하고 선진국의 보편적인 시스템입니다.
박노자 교수를 비롯한 진보좌파 지식인들의 문제는 이러한 사용자의 권리는 외면하고 무조건 노조의 권리만, 그것도 정규직 기득권 상층 노동자의 권리만 주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어디 선진국에서 사용자 권리를 외면하고 노조의 권리만 보장하고 그것도 기득권 상층 노동자의 권리만 보장합니까?
없습니다. 노동3권도 강력하고 광범위하게 보장해 주고 이와 균형을 맞춰 사용자의 대항권도 강력하고 광범위하게 보장해 주고 상층 하층 노동자 모두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게 선진국 시스템입니다.
보수우파들도 마찬가지, 노조를 적대시하기만 하는데 이 역시 잘못된 태도입니다. 노동3권은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입니다. 노조와 노동3권을 강력하게 광범위하게 보장해 줘야 합니다. 대신에 사용자의 대항권도 그만큼 강력하고 광범위하게 보장해 주는 것으로 국가 구조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물론 이때 노동자 측과 사용자 측의 권능을 동등하게 한다지만 사용자 측의 해고자유가 너무나 강력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런 불균형을 보완해 주기 위해서 신자유주의에서는 사회적안전망 정책을 동시에 가져갑니다. 즉 해고가 돼도 노동자들이 걱정 없도록 합니다.
그냥 선진국의 제도, 사상 시스템을 그대로 가져오면 되는데 한국에서 진보좌파는 진보좌파에게 유리한 것만 받아들이고 불리한 것은 배척합니다. 보수우파도 보수우파에게 유리한 것만 받아들이고 불리한 것은 배척합니다. 그러니 뭐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이러니까 "한국은 시궁창 하수구"라는 말이 나옵니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함석헌이 설파한 '한국 하수구론'. 함석헌은 세계의 쓰레기들이 한국으로 들어온다는데, 천만의 말씀이고
세계의 좋은 사상, 제도들이 한국으로 들어옵니다. 다만 통으로 온전하게 들어오지 못하고 자기가 불리한 것은 배척하고 유리한 것만 받으려니까 세계의 좋은 사상, 제도가 한국에 들어오면 시궁창 하수구 속으로 처박히게 됩니다.
이 문제는 그야말로 국가 난제입니다. 크게 보고 멀리 보면서 풀어가야 합니다.
평판경제신문 발행인 겸 기자. 레마코리아 대표이사. 문화정책학·과학기술정책학 박사 과정 재학 중,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경제사상을 연구하면서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를 통합하는 포스트자유주의 이론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평판경제신문
이승훈
jake.seungho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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