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풀어나기에 앞서, 이 글은 정치 이야기가 아니고 경제와 사회와 문화와 역사에 대한 이야기임을 밝힌다.
이번 국회의원 총선거에 나선 친구가 이민과 다문화를 강조하는 정책공약을 홍보하는 것을 보고 뜨악했다. 친구는 이번 총선의 한 지역구에서 경선에서 1위를 달리다가 최종적으로 졌다.
친구가 출마하려는 지역구는 강력한 다선 현역 의원이 있었지만 현역 의원은 교체될 것이라고 봤는데 나의 예상대로 현역 의원은 나갔고 친구는 현역 의원을 제외하고서 경선 후보 중 여론조사 1위를 달렸다. 그러나 12월 말에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하면서 최종적으로는 그 후보에게 졌다.
물론 이민 다문화 강조가 결정적인 패인은 아니고 내가 봤을 때는 경선 전략에서 잘못된 부분이 좀 있다. 다만 포용성을 강조하는 친구의 행위에 대해서 생각해 볼 것이 좀 있다.
경선에서 승리한 후보의 정책의 선명함 등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것을 이야기하자는 것이 아니고, 정치적인 진영을 떠나 포용적인 정책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는 것이다. 정치 이야기가 아니고 경제, 사회, 문화 이야기이고 세상 이야기다.
비례대표가 아닌 이상 지역구에 출마하려는 정치인이 표용성을 표방하기는 어렵다. 지역구 국회의원은 의사대의(모든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종합대변하는 것, 간접민주원리)보다는 의사대리(구체적인 지지자들의 의견을 대변하는 것, 직접민주원리)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민중들은 미시적으로는 옳은 방향으로 나가지만 거시적으로는 잘못된 방향으로 나간다. 대표적인 것이 포용성에 대한 방향. 그래서 사회는, 국가는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엘리트가 필요하고 지도자가 필요하다.
포용을 한다는 것은 이방인에 대한 지대를 버린다는 뜻이다. 미시적으로 보면 지대를 추구하며 이민과 난민, 다문화를 반대하는 것이 당장의 지대를 가진 개인 한 사람에게는 이익으로 보이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손해다.
카를로스 현상
유럽의 왕들 가운데 근친결혼으로 인한 유전적 결함이 가장 많은 왕으로 알려진 이가 스페인의 카를로스 2세다. 정신박약, 정서불안 때문에 '광인왕 (Clarlos el Hechizado)'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카를로스 2세는 합스 부르그 왕가 혈통의 누적된 결혼으로 많은 유전적 질병을 갖게 됐으며 지능도 박약해 그가 직접 통치를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카를로스 2세 치세 동안 스페인의 국력은 크게 약화되었고 그의 사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이 발발했다. 이로 인해 스페인은 유럽에 가지고 있던 많은 영토를 잃었다.
카를로스 2세의 사례에 주목해 선대에서 근친결혼을 많이 한 군주일수록 더 멍청했고 그 치세에서 국가는 더욱 쇠퇴했으며, 반대로 유전적으로 다양성을 가진 군주일수록 더 똑똑했고 국가는 더욱 번영했다는 것을 학자들이 조명했다.
카를로스 2세 현상은 유전과학 분야뿐만 아니라 인문, 사회 분야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즉 개방적이고 포용적이고 문화적으로 다양한 사회일수록 더 번영하고 반대로 폐쇄적이고 지대가 강고하고 차별이 심한 사회일수록 쇠퇴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례로 흔히 거론된다.
대런 애쓰모글루, 제임스 로빈슨이 쓴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책을 보면 카를로스 현상의 이론적 틀에 타당성을 부여하는 내용들이 나온다.
국가의 시스템을 두 가지로, 즉 개방성을 가지고 자유시장경제와 혁신이 통용되고 사유재산이 보장되는 시스템을 가진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로 나눌 때
자유로운 시장경쟁과 개개인들이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나라. 혁신을 긍정하는 나라, 사유재산이 보장되어 개인들의 노력과 이기심(self-interest)으로 생산성이 향상될 때 그것을 누군가가 부당하게 빼앗아갈 염려가 없는 제도를 가진 나라는 번영했다고 한다.
반대로 폐쇄적인 제도를 가진 나라, 인센티브가 없이 이익을 공유하도록 하는 나라, 혁신을 부정하는 나라, 지대가 큰 나라 등은 실패했다고 한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쓴 마이클 샌델이 '인센티브'를 부정하는 도덕적 공리주의를 설파해서 많은 한국인들이 감동한 바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입장, 가치관 하에서는 국가, 시민들이 성장할 수가 없다. 고매한 도덕심과 공리주의가 아니라 이기심과 자유주의로 국가와 시민들이 성장한다.
대런 애쓰모글루의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를 한 줄 요약하자면 '자유주의 정도가 높을수록 사회, 국가는 번영하고 낮을수록 쇠퇴한다'고 요약할 수 있다.
중국은 어떻게?
그런데... '자유주의 정도가 높을수록 사회, 국가는 번영하고 낮을수록 쇠퇴한다'고 하는데 중국은 어떻게 된 영문인가?
공산당 일당독재 중국의 번영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관점이 있을 수 있다. 공산당 일당독재이지만 그 안에 계파들이 많아서 계파들 간의 경쟁이 인센티브와 혁신을 이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나는 그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사실 서구가 중국을 경제 파트너로 삼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소련 견제,
또 하나는 중국이 성장하면 전체주의를 버리고 자유주의 국가로 전환할 것이라는 기대.
대런 애쓰모글루의 견해에 따르면 국가가 지속적으로 번영하기 위해서는 자유주의적 개방된 체제여야만 한다는데, 중국이 그렇지 못해 쇠망해가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고 결국 자유주의 체제로 바뀔 것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은 서구의 기대와는 달리 경제가 성장하면서도 자유주의 체제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오히려 전체주의 독재를 강화하면 했지 달라진 것이 없다.
대런 애쓰모글루의 견해가 틀린 것인가? 그렇다고 볼 수도 있고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서구는 대런 애쓰모글루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중국의 경제와 체제에 대해서 오판했다는 것이다.
대런 애쓰모글루가 말하는 국가의 성공, 번영이라는 것은 1인당 국민소득 10만 달러에서 12만 달러로 성공하는 차원에서의 번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유주의적이고 포용적인 시스템이 필수다.
중국은 1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에서 1만 달러로 성공한 나라다. 그 단계에서는 대런 애쓰모글루가 말하는 포용적인 시스템 없이 독재만으로도 가능할 수 있다.
서구가 이 점을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최근까지 중국에 대해서 오판했다며 중국과 거리를 두는 디커플링 정책이 나오고 한 것인데.
중국은 선진국(현시점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선)의 70% 선까지, 2만 달러대의 나라로 사는 것을 목표로 인구빨로 국민경제 총 GDP를 키워가면서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에 대항한다.
그리고 국가주도로 신기술을 개발하고 군사력을 키워간다. 일부 국민들의 희생 아래서. 미국에 대항해서 패권을 도모한다. 전체주의 국가로서 충분히 가능한 국가전략이다.
이런 연유로 중국은 자유주의 체제 변환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이것도 한때다. 중국의 인구가 점차 감소하고 있다. 중국 인구의 감소는 중국의 지속적 번영을 위협한다. 올해 양회에서는 본격적으로 인구감소 문제를 다룬다고 한다.
인구가 감소한다는 것은 자유주의적이고 포용적인 체제가 아닌 이상 극복하기 어렵다. 높은 수준의 성장률이 지속돼야 하기 때문이고 높은 수준의 성장률을 지속하려면 지금처럼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체제로는 불가능하다.
다만 아직도 일대일로를 통해서 번영하는 전략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점에서 중국이 바뀌지 않고 지금 같은 체제를 고수할 여지도 많다.
100년 뒤의 중국은 지금은 생각하지 말자. 100년 안에 중국은 과연 바뀔까? 중국은 실패할까? 성공할까?
그건 그렇고 아직도 이민과 다문화에 부정적이고 배타적인 인종차별을 일삼는 토종 한국인들을 보면 암담하다. 내가 보기엔 현재의 저출산 기조는 극복할 수 없고 그렇다면 해결책은 이민과 다문화인데 한국에서는 이를 적극적으로 포용하는 정치세력이 보이지 않는다.
현재 한국 상황을 돌아보면 자칭 민주진보좌파 진영 사람들은 경제적 영역에서 자유주의적 가치를 부정한다. 인센티브와 이기심(self-interest)을* 무시하고 돈보다 사람을 앞세우고 이익을 나눌 것을 강요한다 -정작 지도층, 상층부 좌파는 식언한다- 사람보다 돈을 앞세워야 사람이 귀해지고 존엄해진다는 진리를 좌파들은 이해를 못 한다.
암담하지만 그렇다고 그에 반대하는 세력에 기대를 할 수도 없다. 자칭 보수우파 진영의 사람들은 정치사회문화에서 자유주의적 가치를 부정하고 각종 차별을 일삼는다.
한쪽은 경제적으로 폐쇄적이고 다른 한쪽은 정치사회문화적으로 폐쇄적이다. 이렇게 한국은 실패하고 있다.
포용성을 내세운 친구는 졌잘싸했다. 친구가 갈 수 있는 길은 여러 가지다.
폐쇄적인 나라는 쇠망하고 포용적인 나라는 번영한다는 진리를 명심해야 한다.
평판경제신문 발행인 겸 기자. 레마코리아 대표이사. 문화정책학·과학기술정책학 박사 과정 재학 중,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경제사상을 연구하면서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를 통합하는 포스트자유주의 이론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평판경제신문
이승훈
jake.seungho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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