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의 전설급 대선수 차범근 전 국가대표팀 감독이 최근 손흥민-이강인 갈등 사태에 대해서 발언한 것이 또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차범근(70) 전 감독은 29일 서울 종로구 HW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36회 차범근축구상 시상식에서 축구대표팀 이강인(22·PSG)과 손흥민(31·토트넘)의 갈등을 언급하는 과정에서 이강인의 부모와 손흥민의 부모를 비교하면서 "이강인의 부모님과 내가 회초리를 맞아야 한다"고 말했다.
차범근 전 감독은 "유럽에서는 선후배나 어른의 개념 없이 모두가 동료라는 생각이 있고 코칭스태프에게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나타내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며 "(유럽에서 생활한) 어린 선수들은 자신이 경험한 문화를 자연스럽게 배우고 닮아갈 수밖에 없다" 고 한국과 서구 유럽의 다른 문화를 소개했다.
이어서 "동양적인 겸손과 희생이, 혹은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로서의 책임감이 자칫 촌스럽고 쓸모없는 짓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동양적 인간관계야말로 우리가 자연스럽게 물려받은 무기이고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차범근 전 감독은 손흥민의 부모와 이강인의 부모를 비교하면서 논란을 만들었다.
손흥민의 부모에 대해서는 "(손흥민은) 아버지가 엄격하시다 보니 아들 교육을 잘 시켜 팀을 잘 이끌어 갔던 것 같다. 그래서 우리 어른들이 더 아이들을 잘 교육해야 되지 않을까"라고 했으며
이강인의 부모에 대해서는 "설사 아이들이 소중함을 모르고 버리려 해도, 아이들이 존경받는 성인으로 성장하도록 어른들이 다시 주워서 손에 쥐여줘야 한다. 이걸 가르치지 못한 이강인의 부모님과 뻔히 방향을 알면서 알리려 애쓰지 않은 저 역시 회초리를 맞아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차범근의 발언을 다루면서 '두 선수의 부모를 끌어오는 것은 불필요했다'는 취지의 언론 보도도 나오고 있다. 댓글에서는 기자의 생각과 차범근 전 감독의 생각에 대해 저마다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이강인의 싸가지 없음과 그 잘못을 용서할 수 없다는 의견들이 다수로 보인다.
일단 기자 말대로 "손흥민 선수와 이강인 선수의 부모를 끌어오는 것은 불필요했고 게다가 비교까지 하는 것은 더더욱 불필요했다고 본다. 이강인은 성인이기 때문이다. 부모 책임이 아니라 자기 책임이다.
차범근 전 감독의 발언에는 여러 가지 생각해 볼 부분이 있다. 일단 차범근 전 감독은 전형적인 특수주의 (커뮤니태리어니즘) 가치관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수주의 및 보편주의, 커뮤니태리어니즘, 유니버셜리즘에 대해서는 아래의 관련기사를 참조해 주시기 바란다.
특수주의, 커뮤니태리어니즘 가치관을 가지는 것이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다. 다만 보편주의, 유니버셜리즘 가치관과의 조화로운 관계를 생각해 보아야 하고 어떤 태도, 어떤 해결책이 앞으로 사회를 보다 발전시킬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차범근 전 감독은 동양적인 인간관계에 대해서 매우 바람직하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근거 없이 동양적인 것을 우수하게 보면 옥시덴탈리즘(서구비하)에 빠질 수 있다.
자기주장을 강하게 내는 것을 한국인들이 이상하게 내지는 바람직하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는 있다. 서구에서는 자기주장을 강하게 내는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하지만 한국에서는 독선적인 것으로 비약시켜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자기주장이 강하고 분명한 것은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칭찬의 대상이 되고 바람직하다고 보는 게 서구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일반적인 문화다. 물론 서구도 자유민주주의가 일반화되기 전에는 자기주장을 강하게 말할 수 없었다.
아무튼 서구에서는 오히려 자기 생각을 분명히 말하지 않고 얼버무리거나 뒷말하는 사람들을 바보 취급 하거나 비겁한 사람 취급을 한다. 예외가 없지는 않다. 서구에서도 외교적 수사 같은 경우는 두루뭉술하게 말하는 것이 미덕이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분명한 것은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권장 받아야 할 일이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분명한 것을 독선적이라고 하면 곤란하다. 독선적인 사람이 자기주장이 강한 것일 뿐이다. 이 논리 집합 관계를 많은 한국인들은 착각한다.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들이 다 독선적인 것이 아니다. 반론을 허용하지 않고 자기 말만 하는 사람들 자기 생각이 무조건 옳다고 하는 사람들이 독선적인 것이다.
자기주장에 근거를 대고 분명히 말을 해줘야 상대방도 그 근거를 치면서 다시 공격을 할 수가 있다. 분명하게 말해주지 않으면 어떻게 상대방이 나를 공격하나? 자기 생각을 분명하게 강하게 말해서 상대가 나를 제대로 비판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의 미덕이다.
민주주의가 발달한 서구에서는 어릴적부터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토론 교육을 하고 강하고 분명하게 자기 주장을 하도록 교육받는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화자와 메세지를 분리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 주장의 논거에 대해 비판하는 것을 인신에 대해 비판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많고 그 때문에 토론이 인신공격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많다. 바꿔야 할 문화다.
이러한 시대의 변화, 민주주의 체제로의 사회 체제의 변화를 거역하고서 자기주장을 삼가는 것을 겸손과 희생이라는 가치를 들어서 높이 평가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까? 생각해 볼 일이다.
사실 시상식에서 차범근의 발언도 매우 강하고 분명한 주장이었다. 이러한 차범근의 주장이 나오는 것 자체를 "이상하다"면서 문제 삼으면 곤란하다는 점에서 차범근의 발언은 자기모순이다.
차범근의 생각은 '까놓고' 말하자면 '싸가지'라는 태도를 강조하는 전통적인 성리학 가부장권위주의적 발상이다.
이 문제와 관해서 필자가 이강인의 잘못을 말하면서 '싸가지'를 거론하면 곤란하다고 논한 바 있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항의한다.
"지금 대한민국의 모든 예의범절이 사라진 것이 당신(평판과 신뢰자본 필자)과 같은 생각에서 나온 결과다. 손주 같은 애들이 전철 안에서 노인네를 욕하고 때리는 것이 괜찮을까? 억겁의 세월이 흘러도 인간의 예의범절은 없어질 수 없다" 이러면서 필자를 맹비난하고 도배를 하듯 많은 글을 계속해서 남기고 간다.
이들 특수주의자 내지 전통주의자, 커뮤니태리언들은 예의범절을 꼭 '싸가지' 같은 수직적 위계질서의 가치관으로만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의라는 것은 보편주의자, 유니버셜리스트들의 가치관인 수평적 상호존중의 가치관으로도 지킬 수도 있다.
손주 같은 애들이 전철 안에서 노인네를 욕하고 때리는 것은 쌍방향 수평적 상호존중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비판받는 것이다. 수평적 상호존중의 가치관이 예의범절을 없앤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야말로 착각이다.
이 논리는 그대로 이강인의 행위에도 적용된다. 이강인은 싸가지라는 수직적 위계질서를 지키지 않아서 비판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존중의 예의범절을 지키지 않아서 비판받아야 하는 것이고 원팀이 합의한 질서와 Commit를 지키지 않아서 (익일 경기에서 손흥민에게 패스를 하지 않는 것 등) 비판받아야 하는 것이다.
싸가지를 강조하면 팀이 경직되고 제대로 경기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거스 히딩크 감독이 2002년 월드컵 대표팀 감독을 맡아서 한국 국가대표팀 안에 만연했던 싸가지 문화를 없애버렸던 것이다.
禮라는 것에 대해서 말하자면 禮의 철학자 순자(荀子)는 "선예불상(善禮不相)"이라고 했다. "바람직한, 좋은 예(禮)는 상대를 따지지 않는다" 예(禮)라는 것은 지위의 고저를 막론하고 모두가 지켜야 할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순자는 예를 모두가 지켜야 한다고 보지만 다만 평등을 추구한 것은 아니고 사회의 위계질서는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지위가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나이 적은 사람이나 나이 많은 사람이나 선배나 후배나 쌍방향의 수평적 상호존중의 질서로 모두가 지켜야 하는 것이 예(禮)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예(禮)가 한국에 들어와서는 이상하게 권위주의로 변질해서 사람들은 '싸가지'를 운운하며 일방향의 수직적 질서를 강조하고 기득권 수호의 수단, 명분으로 전락시켜버린다.
평판경제신문 발행인 겸 기자. 레마코리아 대표이사. 문화정책학·과학기술정책학 박사 과정 재학 중,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경제사상을 연구하면서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를 통합하는 포스트자유주의 이론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평판경제신문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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