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성 상품화는 안되고 남성의 성 상품화는 되냐?'는 문제로 논란이 일고 있다.
여성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호주의 성인(19금) 뮤지컬 '썬더 프럼 다운 언더 (Thunder from down under)'가 지난달 말 서울 공연을 마친 뒤로 남성들의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
남성들은 바로 전에 일본의 성인 영화(AV) 여배우들이 나오는 팬미팅 행사가 '여성의 성 상품화'라는 이유로 무산된 것을 거론하며 형평성도 없고 규제의 원칙도 없다고 항의한다.
이렇게 '여성의 성 상품화는 안되고 남성의 성 상품화는 되냐?'는 문제로 한국의 여성 페미니스트들의 이율배반을 지적하는 비판이 쇄도하고 있다.
이 문제와 관해 개인적인 이야기를 잠시 하자면 필자는 2년 전에 박칼린의 뮤지컬 '미스터 쇼'를 옹호하다가 한국의 여성 페미니스트들과 척을 지게 됐다.
필자는 자유주의 계열 페미니스트로서 한국의 여성 페미니스트들과 매사 생각이 달라서 자주 대립했다. 성 상품화 이슈에서도 한국의 여성 페미니스트들의 이율배반과 논리 모순을 지적하다 심한 논쟁을 벌였었다.
박칼린의 뮤지컬 '미스터 쇼' 역시 '썬더 프럼 다운 언더'와 같이 여성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성인 뮤지컬 공연이다. 상의를 탈의한 반나체의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육체적인 매력을 보이며 신체 접촉 서비스도 하는 것까지 두 공연의 형식이 같다.
그런데, 박칼린의 성인 뮤지컬 '미스터 쇼'에서도 여성의 성 상품화는 안되고 남성의 성 상품화는 괜찮다는 한국의 여성 페미니스트들의 논리에 말이 많았다.
필자는 여성의 성 상품화를 비판하는 한국의 여성 페미니스트들이 틀렸다고 주장했었다. 그 일로 한국의 여성 페미니스트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필자가 생각하기에 한국의 여성 페미니스트들로부터 제대로 된 반박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다.
여성의 성 상품화를 나쁘게 볼 이유가 없고 남성의 성 상품화도 나쁘게 볼 이유가 없다. 왜냐면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아닌 말로, 세상에 여성의 성 상품화 공연이든 남성의 성 상품화 공연이든 법적으로 포르노가 아닌 이상 성인이 알아서 소비해야 할 문제에 '감놔라 배놔라' 간섭을 하는 나라는 종교적 근본주의 국가와 권위주의 후진국 외에는 없다.
남성의 성 상품화가 괜찮은 것처럼 여성의 성 상품화 역시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 관객들이 미성년자가 아니잖은가? 성인이 성인 공연을 보는 것이 뭐가 잘못됐나?
그래서 필자는 박칼린의 '미스터 쇼' 공연을 즐기는 여성들이 잘못한 것이 없다고 옹호했다. 그리고 남성들이 여성의 성 상품을 소비하는 것처럼 여성도 남성의 성 상품을 소비할 수 있어야 여성들이 성적자기결정권을 온전히 행사하고 보다 주체적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랬더니 한국의 여성 페미니스트들은 내 주장에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여성도 남성처럼 성 상품을 소비할 수 있어야 한다니 여성 편을 드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성 상품화를 긍정하니 성 상품화를 반대해온 자신들을 저격하는 것 같기도 하고...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성 상품화가 왜 비난받아야 하나?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 한국의 여성 페미니스트들은 성의 상품화, 몸의 상품화에 대해서 강박적으로 거부하는 경향이 심하다.
-물론 한국의 여성 페미니스트들은 이번 '썬더 프럼 다운 언더'나 박칼린의 '미스터 쇼'처럼 여성을 위한 남성 성 상품화에 대해서는 이율배반적으로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한국의 여성 페미니스트들은 왜 성 상품화를 반대하는지 그 이유도 모르면서 그냥 '멋있으니까' 페미니즘 운동을 하고 있고 성 상품화를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한국의 여성 페미니스트들의 성 상품화나 몸의 상품화에 대한 강박적인 반대는 남성우월 사상을 담은 성리학 근본주의의 유습에 불과하다고 본다.
성 상품화나 몸의 상품화가 비난받아야 한다면 정신의 상품화나 지식의 상품화는 아무런 문제가 없나?
20세기 후반 성 상품화의 세계적인 기수인 가수 마돈나는 성의 상품화에 앞장섰지만 여성의 권리를 신장시킨 페미니스트로서 평판이 높다.
성 상품화, 몸 상품화, 정신의 상품화 지식 상품화는 그 자체로 무조건 긍정될 것도 아니고 무조건 부정될 것도 아니다.
다만 이들 상품화가 '인간 소외'를 만들 경우에 비판받아야 한다. 예를 들어 지식이나 정신의 상품화도 고액 불법 과외처럼 '인간 소외'가 발생한다면 마땅히 비판받아야 한다.
성 상품화, 몸의 상품화도 마찬가지로 그로 인해 '인간 소외'가 만들어지면 비판받아야 한다. 그런데 성 상품화, 몸의 상품화 그 자체가 '인간 소외'를 만들어낸다고 볼 측면이 있나? 필자는 없다고 본다.
오히려 그런 성인 산업을 불온시하고 성인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배척하고 비난하는 것이 인간 소외라고 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면 국민들에게 다양한 개성 발휘의 기회를 만들어 줘야 한다. 예를 들면 미인대회도 여성의 외모를 보는 미인대회를 두고 "여성의 성 상품화", "잘생기지 못한 여성을 소외시키는 처사"라고 비난하고 금지할 것이 아니다.
여성의 외모만 보는 미인대회만을 허용하면 당연히 매력적인 외모를 가지지 못한 여성을 소외 시키는 결과가 나온다. 인간 소외를 초래하므로 그런 것은 극복돼야 한다. 성 상품화나 몸의 상품화가 지식의 상품화나 정신의 상품화보다 인간 소외가 일어나기 쉽다는 점에서 더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한다.
그러나 인간소외를 부르는 성 상품화는 극복되어야 하는 것이지 금지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내면의 강인함을 보는 미인대회, 정치력이나 사회적인 지도력을 중심적으로 보는 미인대회 등등 여러 미인대회를 만들어 각자 저마다 개성을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게 자유민주주의 질서에 부합한다.
필자가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의 교조적인 성 상품화 반대 논리에 학을 뗀 사건이 있었다. 바로 유니 사건. 그 사건을 계기로 나는 한국의 여성 페미니스들에게 환멸을 느끼고 더 이상 그들과 함께 하지 않기로 했다.
유니는 자신의 외모를 무기로 섹시 콘셉트의 노래와 퍼포먼스로 연예활동을 했다. 그런데 이러한 유니를 극렬하게 비난한 집단이 두 집단이 있었다. 하나는 남성 가부장 권위주의 마초들, 또 하나는 페미니스트들을 자처하는 한국의 여성 페미니스트들.
남성 가부장 권위주의 마초들이 유니를 비난하는 것은 이해가 된다. 유니의 성적자기결정권이 남성의 봉건적 지배질서를 무너뜨리니까.
그런데 스스로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한국의 여성 페미니스트들이 "유니가 성 상품화로 여성의 지위를 떨어뜨린다"면서 유니를 비난하고 결국 자살로 몬 것은 두고두고 비판받을 일이다. 그 누구보다도 여성의 지위 신장에 노력해온 유니를 두고 여성의 지위를 떨어뜨린다니... 황당한 주장이다.
'썬더 프럼 다운 언더'도 '미스터 쇼'도 허용하고 '일본 성인영화배우 팬미팅 행사'도 허용해야 한다. 그런 게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모습이다.
물론 그런 성 상품화 공연, 이벤트만큼 다른 쪽에서 여러 가지 공연, 이벤트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그래야 여성의 권리가 신장되고 우리 사회의 문화 수준과 인권 수준이 올라간다.
평판경제신문 발행인 겸 기자. 레마코리아 대표이사. 문화정책학·과학기술정책학 박사 과정 재학 중,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경제사상을 연구하면서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를 통합하는 포스트자유주의 이론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평판경제신문
이승훈
jake.seungho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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