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로 한국 정부와 대표단이 큰 충격을 받은 듯하다. 그런데 그 유치 실패에 대한 변명이 너무나 졸렬하여 우려스럽기까지 하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고 앞으로 잘 하면 될 텐데 변명이 졸렬하여 그런 앞으로의 기대마저 무망하다.
한국은 일단 정치외교에서부터 실패했다. 미국이 트럼프와 바이든 정부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버리고 무역 장벽과 보호주의, 자국이익 중심주의. 이른바 '미국 우선주의'로 나가면서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과 거리를 두고 독자노선을 걸어왔다.
미국만을 믿을 수 없어진 사우디아라비아는 제3세계 동맹을 강화하고 세계화 개방경제를 위한 연대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세계질서 속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정치외교 노선은 중국, 러시아, 인도, 아프리카, 중남미, 그뿐만 아니라 이스라엘과도 협력을 하면서 제3세계의 책임 있는 리더로 나서고자 했다.
이렇게 사우디아라비아는 중첩적 다자주의 구도의 신세계 질서를 잘 알고 있는데 한국은 이런 중첩적 다자주의 구도의 신세계 질서를 잘 모른다. 한국 정부가 파악하는 새로운 세계질서란 '신냉전 질서'가 전부인 듯하다.
그러나 '신냉전'이라고 하기에는 인도와 동남아 등 신남방과 아프리카, 중남미가 동의하지 않는다. 인도와 동남아 등 신남방의 경제적 영향력은 날로 커지고 있어 현재 세계 경제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신냉전은 작동하지도 않는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미국의 신냉전 구도에 기반한 인도 태평양 전략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인도와 제3세계가 미국과 나토의 대 러시아 제재에 협력하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신냉전 질서에 입각한 지나친 친미 노선을 고수한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은 제3세계 비동맹이 주된 정서다. 유엔 안보리 표결 같으면 이들이 별 영향력이 없지만 엑스포 표결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이들이 표결을 좌우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프레젠테이션은 한국의 프레젠테이션과 어떻게 다른가?
한국이 강남스타일을 알리며 K-POP 스타와 유명인을 내세워서 한국이 잘 살고 있다는 것을 어필하며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내가 젤 잘나가"라고 노래 부르는 것 같았다.
그에 비해 사우디아라비아는 세계인들이 힘들어하고 있는 기후위기, 에너지위기, 식량위기를 환기시키며 제3세계의 책임 있는 리더로서 이들을 극복하여 함께 번영하자고 비전을 제시하며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제3세계의 책임 있는 리더로 나서서 인류가 힘들어하고 있는 기후위기, 에너지위기, 식량위기를 극복하겠다고 하니 당연히 세계 각국은 사우디를 지지하게 된다.
사우디아라비아가 돈을 많이 썼다지만 돈을 써도 명분이 중요하다. 이런 명분과 비전 없이 돈을 아무리 써도 지지는 받을 수 없다. 오히려 역효과가 나면 모를까.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렇게 제3세계의 책임 있는 리더로서 세계 각국이 가지고 있는 고통과 문제를 공감하면서 인류 공동 번영을 위한 미래 비전을 내세우면서 돈을 쓰니 그 돈도 정의롭고 반갑게 여겨지는 법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번에 평판 개선을 위해서 과거의 오명을 씻고자 한다고 하는데 일각에서는 그런 사우디아라비아는 개최할 자격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과거의 오명을 씻고 국제 규범을 따라가겠다는데 그걸 말리는 게 더 이상하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약속이 실현될지 안될지 공수표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응원은 해줘야 한다는 게 정상적인 반응이다.
한국인들, 유치 대표단은 무엇보다 왜 돈을 벌고 왜 돈을 쓰는지 돈에 대한 철학, 인간과 세계에 대한 철학이 부족해 보인다. 엑스포 유치전 패배의 이유로 한국 대표단은 사우디에 투표한 나라들이 돈에 팔려간 것처럼 말한다.
국제정세의 변화 흐름에 무지한 것도 모자라 정무적 외교적 감각까지 바닥인 것이 드러나서 참으로 우려스럽다.
대표단의 변명은 졸렬하기 그지 없다. 사우디에 투표한 나라들이 한국 대표단의 말을어떻게 받아들일까? 심하게 모욕적인 변명이다. 심리적 투사다. 돈에 집착하는 것은 오히려 한국이다. 한국에게는 가족과 인류애의 가치가 보이지 않는다. 돈만을 추구하느라 가족과 인류애의 가치를 저 멀리 내팽개쳤다.
국가에도 평판관리가 그대로 적용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평판관리를 아주 잘하여 과거의 잘못을 용서받고 미래를 약속받는다. 그러나 한국은 평판관리를 엉터리로 하고 있다. 너무나 졸렬하여 우려스럽기까지 하다.
평판경제신문 발행인 겸 기자. 레마코리아 대표이사. 문화정책학·과학기술정책학 박사 과정 재학 중,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경제사상을 연구하면서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를 통합하는 포스트자유주의 이론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평판경제신문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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