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카드·현대커머셜의 CEO인 정태영 부회장이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문화를 비교하는 포스팅을 올려 화제가 되고 있다.
아마도 손흥민-이강인의 갈등에 이은 차범근 전 감독의 발언을 두고 벌어진 여러 가지 논란에 대해 정세영 부회장의 생각을 적은 것으로 보인다.
정태영 부회장은 3월 2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동양은 집단주의, 서양은 개인주의라며 문화의 차이를 이야기하는데…"라며 운을 떼고 자신의 경험담을 소개했다.
정태영 부회장은 "서양은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대신 팀웍의 강조는 한국보다 몇 배는 더 강하다. 360도 평가 때문인지 팀플레이는 다들 익숙하고 때로는 불쌍할 정도로 요구된다" 고 한국인들의 고정관념과 다른 경험담을 이야기했다.
반면에 "한국은 프라이버시는 그리 존중되지 않고 단체행동은 익숙하지만 막상 일에서 팀웍의 강조는 느슨하고 뿔뿔이 흩어져 있다."면서 손흥민-이강인 갈등 사태를 염두에 두는 듯한 말을 했다.
정태영 부회장은 "우리가 프라이버시와 개인행동, 팀웍과 단체행동은 나누어서 생각을 해야 미래에 더 맞는 문화가 들어서지 않을까"라면서 개인주의가 반드시 팀웍이나 단체행동과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했다.
한국에서는 개인주의에 대한 편견(bias)이 심하다. 개인주의를 이기주의와 구별하지 못한 것에서 비롯한 편견이다.
개인주의와 관련해서 유명한 말이 있다. 바로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수상의 발언이다.
대처 전 수상은 "사회 같은 것은 없다. 오직 개인과 가족만이 있을 뿐이다"라고 발언하여 집단주의 (특수주의, 커뮤니태리어니즘) 문화에 젖어 있는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다.
사회주의자를 비롯한 집단주의자들은 대처의 주장에 대해 "사회를 부정하고 개인과 가족밖에 없다면 사회는 이기주의가 팽배해서 무너질 것"이라며 대처 전 수상을 맹비난했다.
그러나 개인주의자인 대처 전 수상이 말하는 개인은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사회 속의 개인'이다. 개인주의에서 개인은 '나도 개인이고 당신도 개인이고 그도 개인이고 그녀도 개인'이라는 뜻이다.
개인주의자들이 "사회라는 것은 없다"고 할 때 그 사회는 '인격체로서의 사회', '공동선을 추구하는 사회'다. 인격체로서의 사회가 없다는 뜻이고 다만 개인과 개인, 개인들이 존재하는 사회가 있을 뿐이라고 보는 것이다.
인격체로서의 사회의 이익이 아니라 인격체인 모든 개인들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 개인주의다. 그래서 개인과 개인, 이 개인 저 개인 모든 개인들의 이익을 도모하는 개인주의는 자기 자신만의 이익을 도모하는 이기주의와는 다르다.
개인주의자들은 '사회 속의 모든 개인은 혼자서는 살 수 없고 이기적으로 행동해서는 살 수가 없다'고 본다. 때문에 개인과 개인은 반드시 상대를 존중하며 배려해야 하고 협업과 분업으로 관계를 맺고 교환과 거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처 전 수상은 "사회 같은 것은 없다. 있는 것은 개인과 가족뿐이다"라는 말 뒤에 곧바로 이어서 "그래서 우리는 서로 서로 도우며 살아야 한다"라면서 개인주의의 진면목, 즉 이타주의를 보여주었다.
그래서 개인주의는 본질적으로 이타주의다.
반면에 집단주의자들은 공동체 집단의 이익을 추구한다는데 집단주의자들의 공동체가 코즈모폴리턴, 사해동포주의적인 규모의 공동체로 확장되지 않은 것이 인류 역사의 경험이다. 모든 사람이 성인군자가 될 수 없는 인간의 원초적 한계다.
인간의 원초적 한계로 인해 집단주의에서 공동체는 필히 '소집단 공동체'로 한정된다. 이 소집단 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다른 공동체의 이익에 무관심하다. 공동체 외부에 대해 폭력이 발생한다.
이렇게 집단주의의 공동체 이념은 개인주의적인 상호 배려, 분업과 협업이 이뤄지지 않고 배타적인 소집단 공동체로 전락하며 소집단 공동체의 이기주의로 흐른다.
개인주의를 체화한 가치관인 신자유주의 가치관에서는 "모든 인간은 존엄성에서 같고 모든 인간은 개성에서 다르다"고 본다. 인간의 지향점, 선호가 모두 제각각인데 공동체 주의자들처럼 공동선을 설정하고 그 공동선을 따르다 보면 반드시 개성과 어긋나는 경우가 발생한다. 모든 인간은 개성에서 다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집단주의가 공동선을 도모하는 과정에서도 폭력이 발생한다. 집단주의자들은 공동체의 이익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공동체 내부의 이견을 무시한다. 이른바 '대(大)를 위해 소(小)를 희생한다'는 발상이 바로 집단주의, 공동체주의에서 나타난다. 소(小)의 입장이 되어보면 그 희생을 무작정 받아들이기 어렵다.
'대(大)를 위해 소(小)를 희생한다'는 집단주의의 공동체 공동선 추구행태는 개인주의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개인주의에서는 개성이 다른 '소(小)'역시 존엄하기 때문에 무작정 희생되어서는 안된다고 본다. 소수자와 약자를 배려하며 소통과 타협으로, 교환과 거래를 통해 이해관계를 조정하며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 개인주의의 규범 질서다.
집단주의자들은 집단주의 사회에는 정(情)이라는 미덕이 있다면서 강조하지만 그 정에 해당하는 애틋한 마음이 개인주의 사회에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개인주의가 철저한 서구 사회에 가보면 한국보다 정이 더 돈독한 것을 볼 수 있다. 개인주의니까 상대를 애틋하게 배려하는 것이다. 오히려 집단주의의 정이라는 것은 프라이버시의 침해, 사생활 간섭의 억압과 폭력으로 나타나기 일쑤다.
세계 최고 선진국이라는 서구 여러 나라들이 철저한 개인주의 사회라는 것은 중고등학교 시절에 익히 배워서 알 수 있을 것이다.
집단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개인주의가 그토록 이기적이고 나쁘다면 모든 인간이 존엄하고 인권이 고도로 보장되는 선진국 서구사회는 도대체 어떻게 존재할 수 있으며 '얀테의 법칙'이 기본 규범이 되는 북유럽 사회는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까?
네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말라.(Don't think you're anything special.)
네가 남들과 같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Don't think you're as much as us.)
네가 남들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말라.(Don't think you're wiser than us.)
네가 남들보다 더 나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Don't convince yourself that you're better than us.)
네가 남들보다 더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 말라.(Don't think you know more than us.)
네가 남들보다 남들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말라.(Don't think you are more than us.)
네가 모든 것에 능하다고 생각하지 말라.(Don't think you are good at anything.)
남들을 비웃지 말라.(Don't laugh at us.)
아무도 너를 신경 쓰지 않는다.(Don't think anyone cares about you.)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 하지 말라.(Don't think you can teach us anything.)
너에 대해서 우리가 모른다고 생각지 말라.(Don't think there's anything we don't know about you.)
이처럼 개인주의가 철저한 북유럽 사회의 개인 규범으로 알려진 '얀테의 법칙'은 '사회 속의 개인'과 '상대방 존중'을 강조한다.
공동체 내부의 소수자를 억압하고 공동체 외부의 다른 집단을 배척하는 과정에서 집단주의는 공동체 이기주의로 빠진다. 그래서 개인주의는 본질적으로 이타주의인 것처럼 집단주의는 본질적으로 이기주의다.
대동(大同)세상의 공동선을 추구하는 집단주의 보다는 소강(小康)세상의 이기심을 추구하는 개인주의가가 보다 더 인간들을 이롭게 하고 이타주의를 확산시킨다
대동의 공동선보다 소강의 이기심이 보다 더 모든 인간들을 이롭게 하는 원리가 바로 셀프 인터레스트 (self-interest, 재귀적 이기심)의 원리다.
자 그럼 정태영 부회장이 지적한 개인주의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고 이제 진짜 개인주의 가치관을 가지고 이강인-손흥민 갈등을 보자.
개인주의라는 가치관은 개인 혼자서는 사회에서 살 수 없고 반드시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하고 협업할 것을 강조하는 이타주의 가치관이기 때문에 개인주의가 개성을 강조하고 프라이버시를 강조한다고 해서 팀웍을 소홀히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개인주의자일수록 팀웍을 강조한다.
개인주의 가치관에서는 상호 존중의 수평적인 인간관계를 가지기 때문에 예의범절이 없는 것이 아니다.
손흥민-이강인 갈등 관련 칼럼을 읽은 어떤 이는"개인주의 사회가 되고 평판과 신뢰 자본 필자와 같은 생각이 만연해지면 손주 같은 애들이 전철 안에서 노인네를 욕하고 때리면서 예의범절이 사라지고 사회가 무너진다"면서 필자를 비난하고 온갖 험담과 비난 섞인 글을 혼자서만 말하고 도배하고 가곤 한다.
그러나 손주 같은 애들이 전철 안에서 노인네를 욕하고 때리는 짓은 개인주의에서 용납할 수 없다. 노인도 손주를 존중해야 하고 손주도 노인을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손주는 노인을 존중하면서 수평적인 인간관계를 지향해야 하기 때문이다.
개인주의 가치관에서 이강인의 행위을 보면 이강인은 개인주의의 상호 존중, 배려 의무를 버리고 주장에게 막대했기 때문에 개인주의 예의범절을 어긴 것으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강인은 '싸가지'라는 후배에게만 요구되는 집단주의 의무를 어겼다고 비판받아서는 안된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한편, 아마존, 인텔 등 다양한 인종, 다양한 개성들을 가진 사람들과 협업하는 것이 필수인 글로벌 대기업에는 Disagree and Commit라는 원칙이 사내 규칙으로 있다.
이 Disagree and Commit 원칙은 개인주의 (보편주의, 유니버셜리즘)가치관에서는 당연한 내용인데 세계 여러 인종 다양한 문화를 가진 나라에서는 집단주의. 특수주의, 커뮤니태리어니즘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이들에게 개인주의적 규범 질서를 사내 규칙으로 알려서 따르도록 하는 것이다.
즉 싸가지 없이 제각각 자유분방하게 의견을 내는 것을 권장하면서도 그 의견을 취합해 원팀의 규범 질서를 만들면 이제 그 원팀의 규범질서를 철저하게 따라야 한다는 개인주의 규범을 구체화 한 것이다.
이강인은 Disagree를 해서, 즉 싸가지가 없어서 비난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Commit 를 따르지 않아서 비판받아야 한다. 이강인은 주장을 존중하지 않고 익일 경기에서 패스도 제대로 하지 않는 이기주의적이고 막 나가는 행동을 보였다. 이것은 개인주의 규범 가치관에서는 있을 수 없는 행동이다.
ps. 집단주의자들이 지금도 유튜브에서 이강인에 대한 거짓 소문을 영상으로 만들어 퍼뜨리고 공유하고 있다. 최근 보름 동안 이강인에 대한 가짜뉴스가 300여건이 올라오고 이들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사람들은 모두 7억 원을 벌어들였다.
이처럼 집단주의에서는 개인의 비판적 사고가 마비되고 양심이 마비되기 십상이고 폭력을 터뜨리기 십상이다. 나치 독일의 사회가 집단주의 가치관이 극에 달한 사회다.
평판경제신문 발행인 겸 기자. 레마코리아 대표이사. 문화정책학·과학기술정책학 박사 과정 재학 중,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경제사상을 연구하면서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를 통합하는 포스트자유주의 이론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평판경제신문
이승훈
jake.seungho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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